[지자제5년 살림살이 진단]血稅 '샛길'로 샌다

  • 입력 2000년 7월 2일 21시 22분


전국 곳곳에 우뚝우뚝 들어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대규모 신청사 겉보기와는 달리 지자체의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상당수 지자체는 '국비는 공돈'이라는 생각으로 국비를 불요불급한 사업에 펑펑 쓰고 있다.

['최악 낭비사례'로 꼽혀]

▼신청사 짓기▼

경실련은 3월초 '99년 최악의 10가지 예산낭비 사례'를 발표하면서 대전시 신청사를 3위로 발표했다. 이 청사는 95년 3월 착공해 99년 11월 완공된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사업비는 총 1414억원.

지하 2층 지상 21층 연면적 2만6380평으로 전국 자치단체 청사 중 최대 규모다.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돼 있고 컴퓨터 중앙제어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부채가 6566억원인데다 재정자립도가 76.7%인 대전시가 '번듯한' 신청사를 짓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지은 건물인 만큼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비용마련 위해 지방채발행▼

사업비 286억여원을 들여 3년5개월여의 공사 끝에 올 5월 12일 완공된 부산 강서구 신청사는 지하 2층 지상 8층으로 연면적 6400여평. 구청 직원 350명이 1인당 18평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단체 등은 재정자립도가 25%로 부산지역 16개 기초자치단체 중 최하위인 강서구가 연간 지방세 수입(430억원)의 65%가 넘는 예산을 들여 대형 청사를 지은 것은 잘못됐다는 반응이다. 특히 공사비 중 81억원은 빚(지방채 발행)을 내 마련했다.

충북 충주시도 97년 6월 입주한 현 청사(지하 2층 지상 11층 연면적 1만3000여평)를 짓기 위해 사업비 462억원 중 부족분 147억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했다.

현재 공사가 중단된 대전 서구 둔산동의 서구청 신청사 사업은 신청사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사가 중단된 것은 서구의회가 5월 13일 임시회에서 '지역살림이 어렵다'며 상정된 올해 구청사 건립비 30억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체적 예산조달 방안도 없이 총 369억원의 예산으로 지하 1층 지상 7층짜리 청사를 짓겠다며98년 10월 착공한 신청사 건축은 공정 22%에 머물러 있다.

또 전북도는 사업비 1900억원을 들여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지하 2층 지상 18층 연면적 2만5288평 규모의 신청사를 내년 초 착공해 2005년 상반기에 입주키로 하는 등 상당수 지자체들이 신청사를 지으려 하고 있다.

[배정된 국비 "쓰고 보자"]

▼국비는 '공돈'▼

경남도는 9월 26일부터 한달간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의회 뒤편 운동장에서 '국제조각 심포지엄'을 열기로 하고 최근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행사 예산 8억원은 전액 국비. 경남도 미술박물관 건립비 20억원과 함께 '따온' 것이다.

이 행사는 2002년 8월경 완공될 경남도 미술박물관 주변에 세울 조각품 20여점과 박물관 벽면에 설치할 대형 부조(浮彫)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남도가 '아기를 낳기도 전에 기저귀 먼저 장만하려 한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2년 뒤 완공될 박물관에 필요한 조각품 등을 미리 확보하려는 것은 책정된 국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반납해야 되기 때문.

전남도는 지역 농산물 판로를 개척하고 제주지역 관광객에게전남의 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99년 11월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건평 360평(2층) 규모의 농산물 직판장을 세웠다. 여기에 들인 돈 13억8700만원 중 10억원은 국비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운영자를 찾지 못해 개장도 못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가 지난해 9월 30일부터 한달간 청주시 사직동 예술의 전당 일원에서 개최한 제1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산 58억원 중 31억원도 국비였다. 청주시민회 송재봉(宋在奉)사무국장은 "국비는 '혈세'가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돈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전·창원·청주=이기진·강정훈·지명훈기자>

doyoce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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