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50돌]아물지 않은 상처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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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한국에 ‘불안한 침묵’이 퍼져 가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1949∼53년)으로 6·25전쟁을 치렀던 딘 애치슨이 1971년 임종하면서 남긴 말이다. 1950년 1월12일 내셔널 프레스센터 연설에서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라인’을 발표한 것이 6·25전쟁을 부른 주요 원인중 하나였다는 ‘지탄’이 숨지는 순간까지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그가 말한 ‘불행한 한국’의 상황은 이후에도 30년이나 더 계속되면서 우리 현대사를 더욱 깊은 질곡 속으로 몰아갔다. 전쟁사가들은 흔히 “전쟁의 상흔이 아무는데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6·25는 ‘예외적인 전쟁’이다. 정전 상태로 전쟁이 47년간 더 계속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쟁의 아픔을 치유할 시간을 갖지 못했음을 뜻한다.

6·25 발발 50주년을 맞는 올해 남북 정상의 만남에 국민이 그토록 환호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쟁의 아픔과 악몽이 그만큼 선연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동족 상잔의 비극은 남북 모두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겼지만 특히 우리 민족에 안긴 정신적, 내면적 피해는 형언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쟁을 통해 남북간에 적대감이 고조되고 서로를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타도와 전복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이는 남북 공히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모든 분야를 이질화하는 동인(動因)으로 자리잡았다.

‘고요히 잠든 일요일 새벽, 남침 야욕에 사로잡힌 김일성은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략했다’는 국정교과서의 짧은 개전 설명은 반세기동안 국민을 세뇌하며 서로를 사갈시(蛇蝎視)하는 마음만을 키워 왔다.

전쟁 발발 당시 문교부장관에 취임한 백낙준(白樂濬)전장관은 “싸우는 국가의 교육은 싸우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반세기간의 교육은 북한 문제에 대해 한결같이 ‘반공’을 강요했고 누구도 북의 동족에 대해 연민을 나타내서는 안된다는 절대 금기 속에 살도록 했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를 흑백논리와 양자택일 식의 단순 논리가 지배하게 됐다. 중도 및 진보 의견이 몰락하면서 사회의 민주화와 다원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일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가로막는 ‘우상(偶像)’으로도 기능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16일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 화해와 평화를 향한 ‘6·15 남북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65%가 북한을 ‘부정적인 존재’로 본다고 응답했다. 민족 동질성의 훼손이 단시일 내에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6·25전쟁에서 피아간의 살육을 둘러싼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추궁도 이런 ‘명제’속에 묻히고 말았다.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이 국내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무시되다가 지난해 미국 언론에 의해 비로소 여론화한 것이 비근한 예다.

인민군에 의한 학살뿐만 아니라 분단 반세기 동안 철저히 외면당했던 미군과 한국 군경에 의한 양민 학살이 지금에야 재조명되는 것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작업이 이제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비극을 아직도 절절히 체감케 하는 것이 이산가족 문제다. 8·15광복과 6·25를 치르면서 1000만명에 가까운 가족이 남북으로 흩어졌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전쟁 당시 부상자와 전몰 유가족의 고통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전쟁의 상흔은 그만큼 깊고 넓은 것이다.

국방군사연구소 서용선(徐鏞瑄)선임연구원은 “6·25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이산가족 문제밖에 없다”며 “전후 반세기 동안 사상적 대립에 의해 직간접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만 전쟁의 후유증이 치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 그것이 곧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해 남북 정부가 당장 서둘러야 할 일이다.

<황유성기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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