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석방된 4인의 미전향장기수

  • 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17분


수십년간 옥고를 치르면서도 ‘사회주의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아 ‘미전향 장기수’로 불리다 현정부 들어 석방된 김석형(87) 김선명(76) 류은형(77) 홍종선씨(76) 등 4명.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게 13일 남북 정상의 상봉순간은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이날 오전 한 방에 모여 김대중대통령이 떠나는 모습을 TV로 지켜볼 때만 해도 이들은 비교적 차분한 편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 때 우린 진짜로 통일이 되는 줄 알았지만 외세의 간섭 때문에 실패한 경험이 있잖아. 이번에도 두고봐야지.”(김석형)

“이번 회담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국가보안법도 철폐되지 않았고 미군도 계속 주둔하고 있어. 통일까지는 갈 길이 멀지.”(홍종선)

‘미전향 장기수’답게 이들은 “이번 회담을 냉철하게 바라보기로 했다”며 좀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전 10시반경 김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표정이 변했다.

“어이, 순안공항이 저렇게 생겼구먼.”

“지도자 동지께서 공항에 직접 마중을 나오신 건가?”

갑자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는지 김선명씨가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고 다른 이들의 몸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담에 대한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 민족끼리 만난 거니 잘 될 거야. 온 민족이 이렇게 통일을 염원하는데 좋은 결과가 있겠지.”

“그럼, 자유왕래가 허용돼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는 살아야지. 통일될 때까지 살면 더 좋고….”

오전 10시37분 두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순간, 그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류은형씨가 작지만 힘차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머지 3명도 따라서 박수를 치면서 3평 남짓한 작은 방은 박수소리로 가득차 올랐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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