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폐공 200만개 방치 오폐수 콸콸 흘러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2분


《전국의 지하수가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행정의 공백상태에서 날로 악화되는 지하수 오염의 피해자는 이 물을 사용하는 국민이다. 감사원의 지하수 부실 관리 지적을 계기로 전국의 지하수 오염실태와 원인, 대책을 3회의 시리즈로 점검한다.》

국토의 수맥 지하수가 병을 앓고 있다. 최대 200만개로 추정되는 폐공 및 토양을 통해 각종 산업 폐수, 축산 오폐물, 쓰레기 침출수 등이 흘러들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정부는 “댐 몇개 지으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발상으로 대처해왔다.

▽오염 실태〓83년 경기 의왕시 고천동에 있는 한 페인트 제조공장 유류저장탱크에서 톨루엔, 경유 등이 누출돼 땅으로 스며들어갔다. 지하수층까지 침투한 이 오염물질은 지하수의 흐름을 타고 급속히 확산, 현재 주위 87㎢에 달하는 지역의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인근에 흐르는 ‘맑은내’라는 이름의 하천은 이미 하천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변했다. 9일 수심 10∼20㎝로 고여있는 물에서는 기포가 아직까지도 부글부글 일고 있었다. 주위의 자갈은 톨루엔 성분에 의해 산화되어 녹슨 쇠붙이처럼 벌겋게 변해 있었다. 인근 한 업체의 관계자는 “공업용수와 생활용수, 화장실 물까지 수돗물을 끌어다 쓴다”고 말했다.

낙동강을 취수원으로 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낙동강 수질 악화로 8200곳의 지하수 관정에서 연간 7200만t의 물을 뽑아 쓰고 있는데 한국자원연구소 조사 결과 지하수의 20% 이상이 질산성질소나 염소이온, 대장균군 등에 오염돼 있어 음용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의 경우 지하수 관정이 1887곳으로 9만1000가구 32만5000명이 먹는 물로 이용하고 있는데 지하수에서 일반 세균, 대장균군, 질산성질소가 수질기준을 초과해 검출된 곳이 633곳이나 됐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욱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방의 한 공무원은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것을 상부에 보고하면 ‘누구 죽일 일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더욱이 농촌의 경우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철을 앞두고 세균성이질 등 주민피해가 우려된다.

▽무분별한 개발과 폐공의 방치〓지하수 오염의 주범은 정부가 몇개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폐공. 최근 모내기철을 맞아 농민들이 폐공이 있는 줄 모르고 트랙터로 논을 갈다 폐공에 부딪혀 트랙터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할 만큼 폐공이 전국에 널려 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은 무분별한 개발과 폐공 방치의 대표적인 사례.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 94, 95년 18여개의 생수업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몰려와 관정을 뚫었다. 샘물업체들이 미원면에만 110여개의 관정을 판 것으로 조사됐는데 성공률 30%를 감안하면 실제 관정 개수는 3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업자들이 관정을 무분별하게 팠다가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격화되자 폐공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철수해 버린 것.

당시 샘물 개발 반대투쟁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학성(金學成·52)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밭에 폐공이 3개나 있어 밭을 팔아도 폐공처리 비용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작물을 심은 뒤 그대로 비료와 농약을 뿌리게 되니 지하수가 얼마나 오염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부실한 지하수 관정〓폐공뿐만 아니라 실제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는 관정 자체도 관리가 허술하다. 지하수만으로는 일정량 이상의 물을 확보하지 못하자 부족한 물의 양을 확보하기 위해 파이프에 고의로 구멍을 내 지표수를 끌어들이는 일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

실제 강원 원주시의 공단내 한 지하수 관정 내부를 폐쇄회로(CC)TV로 촬영한 결과 지하 18.64m에서 파이프가 파손돼 있는 게 확인됐다. 지하수 오염방지 전문 업체인 한국지하수테크 지차용사장은 “물의 양을 확보하기 위해 고의로 파이프에 구멍을 내는 경우도 많다”면서 “정확한 조사와 데이터에 근거해 관정을 뚫어 실패율을 줄이고 관정덮개를 완전 밀폐해 파이프 주변에 지표수가 흘러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한정상(韓楨相)전 지하수학회장은 “지하수를 지금까지의 사유개념에서 공유개념으로 바꿔 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하며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하루 사용량 30t 미만의 작은 관정도 허가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부·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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