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회장 사칭 금융사기극 2600여명 피해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59분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1과(과장 진선철·秦善哲)는 22일 17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회장으로 행세하면서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투자자 2600여명으로부터 200여억원을 받아 가로챈 금융피라미드 사기조직 CM그룹 회장 김충무씨(37) 등 이 회사 관계자 4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7개 계열사 회장 행세▼

검찰은 또 계열사인 CM네트워크 사장 박모씨(41)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모씨(50) 등 12명을 수배했다.

김씨는 투자자들에게 유망 벤처기업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CMO홈쇼핑’과 ‘CM네트워크’ 등 실제 수익이 없거나 구상단계인 17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 회장으로 행세하면서 국제테니스대회와 복싱대회를 주관 또는 후원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은 “김씨 등은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주는 것 외에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일 경우 이자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주겠다고 유혹한 뒤 1차 투자자들을 피라미드 방식의 치밀한 영업조직으로 엮었다”며 “이들을 통해 단기간에 수많은 투자자와 투자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CM그룹이 100억원 정도의 투자재산이 남아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데다 대부분 제3자 명의로 옮겨놓아 투자자들은 원금회수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상당수 투자자들은 투자 직후 사기 당한줄 알았지만 이를 폭로할 경우 자신의 원금을 못찾을 것을 우려해 쉬쉬하거나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며 “서울에만 이같은 사이비 투자회사가 300여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피해사례▼

정모씨(49·서울 관악구 봉천1동)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가 지난 2개월간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돈만 날린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신뢰까지 몽땅 날렸다. 그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무모한 재테크 열풍의 그늘을 보여주고 있다.

정씨는 3월 중순 평소 알고 지내던 신모씨로부터 금융투자 회사인 ‘CM그룹’을 소개받았다. CM그룹은 서울 동자동 P빌딩 10층 전체를 임대해 호화 사무실을 갖추고 있었고 대치동 N빌딩에는 ‘CMO 홈쇼핑’ 등 그럴듯한 ‘벤처 계열사’ 17개가 들어서 있었다. 또 그룹 회장은 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전도사 출신의 젊은 기업인으로 선전됐다.

정씨는 여유자금을 맡기면 벤처기업에 투자해 한달에 8∼28%의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말을 믿고 4000만원을 내놨다. 74년 전방부대 소위로 임관해 94년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30년간의 군대생활을 한 대가로 받은 퇴직금이었다.

CM그룹은 또 다른 사람이 투자하도록 유치하면 투자유치액의 0.5∼6%를 수당으로 주겠다고 유혹했다. 정씨는 곧 이 회사 ‘영업사원’으로 나서 1개월만에 44명으로부터 5억2100만원의 투자금액을 유치했고 그 대가로 1914만5000원을 받았다. 이대로 가면 ‘억대 연봉’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달 초 검찰이 CM그룹을 수사하면서 껍데기뿐인 ‘벤처’의 실체가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씨는 ‘고액 수당’의 두배나 되는 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지만 항의할 처지가 못됐다. 자신도 투자를 유치한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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