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지소유상한법 피해 손배訴 의미]불성실 입법 관행 제동

  • 입력 2000년 4월 30일 19시 37분


“위헌 결정이 내려진 법률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불성실하게 법률을 만든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

국회의 잘못된 입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상 초유의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입법행위에 대해 면책을 누려온 국회는 적지 않은 충격을 감수해야 하게 됐다.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법안을 심의해온 국회 상임위원회의 관행에 제동을 걸 전망이기 때문. 특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이번 소송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이래저래 정치권은 곤혹스러워졌다.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은 모두 89년 망국적 투기병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제정된 법. 이중 택지소유상한법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대지의 상한선을 6대도시 200평, 나머지 도시 300평 등으로 정한 뒤 이를 초과하면 땅값의 10%의 부담금을 물렸다.

법원의 위헌 판결이 사회정의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면 이번 소송은 국회의원들이 법을 심의하고 만들 때 좀 더 신중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질지도 모른다는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국회개혁 계기로 삼아야”〓시민단체들은 “국회가 진정한 국민의 입법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야 한다며 이번 소송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입법부가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거나 이익집단 등의 로비로 법을 만들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참여연대 박원순사무총장은 “국민이 국가의 잘못된 법 제정과 집행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은 계속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며 “정쟁만 일삼는 국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잘못된 법 제정에 대해 국회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결과는 아직 불투명〓소송을 제기한 김모씨와 변호인 등은 13대 회기 당시 건설상임위원회 회의록 등을 검토해 불성실 심의와 날치기 통과 여부를 입증한다는 계획.

그러나 잘못된 입법을 이유로 국가에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처음이어서 판례가 없는데다 국회 입법활동의 적법성을 판단하는데 대해서는 법원도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승소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법원으로서는 유사한 소송이 봇물을 이뤄 ‘법 안정성’에 대해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법률전문가들도 재판결과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윤진수(尹眞秀·민법)교수는 “입법 절차가 잘못됐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법 제정 당시 국회의원의 불성실 심의여부가 어떻게 가려지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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