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질 '구제역' 파장]10여곳서 發病신고… 전국확산 가능성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 구제역 일파만파 ▼

구제역의 전국 확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예방접종 대상을 전국의 돼지 한우 젖소 등 1100만마리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한 가축은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도축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전국을 대상으로 접종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칫 축산농가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방접종 확대〓3일 현재 정부당국에 구제역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것은 모두 10여곳. 주로 경기 파주시와 화성군, 충남 보령 연기군 등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이들 지역에서 실제로 구제역이 확인될 경우 정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발생지로부터 반경 10㎞ 이내의 모든 가축에 대해 예방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정부는 2일까지 구제역이 확인된 경기 파주지역의 642농가 8만7837마리의 가축에 대해 이미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구제역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예방접종해야 할 가축은 급격히 늘어난다.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예방약 원료는 약 21만마리분. 정부는 앞으로 1주일 내로 영국 퍼브라이크연구소로부터 예방약 원료 200만마리분을 들여오기로 했으며 필요하다면 1100만마리분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민간피해 우려〓예방접종을 한 가축은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궁극적으로는 도축해야 할 대상이다. 예방접종을 한 가축은 구제역이 실제로 발생해 초동단계에서 죽여 매립하는 가축처럼 전액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정부는 일단 정육은 출하를 유도하고 병원균 매개체인 뼈 등 부산물의 폐기에 따른 손실보상을 위해 마리당 2만1000원에서 6만5800원까지의 보상기준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뜻대로 출하가 이뤄져 축산농가가 이 정도의 보상으로 만족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중간유통업자나 소비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예방접종된 고기를 기피해 출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 발표와 달리 축산농가는 막대한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실제로 파주지역 축산농가들은 정부가 보상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하지않은 채 마구잡이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특히 예방접종 이후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새끼를 새로 낳거나 키울 수 없어 사실상 생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여서 축산농가의 보이지 않는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는 아직 명확한 보상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축산농가 비난여론 ▼

정부가 구제역 발생 이후 대응을 소홀히 해 이 병의 전국 확산을 자초했다는 비난이 강하게 일고 있다.

농림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첫 발생지인 경기 파주 권수목장에서 젖소의 수포성 질병 발병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나간 것은 신고 시간인 지난달 24일 오전 10시로부터 27시간이나 지난 25일 오후 1시. 중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이미 2월부터 비상 체제에 들어갔었다는 농림부의 출동 태세가 이 정도였다.

농림부는 또 당시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을 발생 후 5일 동안 단지 ‘수포성 질환’이라고 표현해 사태를 가능한 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일본이 미야자키(宮崎)현에서 발생한 수포성 질환을 즉각 ‘의사 구제역’이란 말로 표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농림부는 충남 홍성에서 유사한 신고가 접수됐을 때는 일본처럼 의사 구제역이란 표현을 즉각 사용해 파주 때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파주의 구제역 파동은 지난달 26일 밤부터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정부는 전국 각지의 동물 병원과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신고를 강화해 줄 것을 홍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홍성에서 발생한 수포성 질환을 당국에 신고한 박세종 세종동물병원장은 “수일전 진단을 받고 돌아간 농가 주인에게 30일 밤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다가 ‘수포가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 듣고 그 다음날 아침 달려가 본 것”이라며 “만약 30일 밤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해 축산 농가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정부는 이미 2월경 중국 옌볜(延邊)지방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적으로 밀수입 육류나 관광객에 대한 검역과 수의사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파주 지역의 개업 수의사인 김모씨는 “97년 대만의 구제역 파동 직후에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작년 이후 구제역과 관련해 당국이 소집한 교육을 받거나 공문을 접해본 적은 없다”며 농림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축산 농가들은 “중국에서 이 병이 발생한 후 정부가 지나치게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화근”이라며 농림부를 비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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