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출판사 남한책 표절…조희문著 '나운규' 일부 무단인용

  • 입력 2000년 3월 26일 19시 57분


북한의 평양출판사가 지난해 10월 민족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나운규(1902∼1937)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이보다 2년 앞서 1997년 출간된 상명대 조희문(趙熙文)교수의 ‘나운규’(한길사)를 무단 인용한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조교수는 “일본 영화계 인사의 제보로 평양출판사의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내 책의 오류까지 그대로 베끼는 등 명백한 표절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북한의 한국 책 무단 인용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단 인용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주로 조교수가 발췌한 신문기사를 재인용하면서 발생한 오류들. 조교수가 ‘매일신보 1926년 10월10일’자에 포빙(抱氷)이 쓴 ‘아리랑’ 영화평을 인용하면서 ‘조선일보 1926년 10월1일’자로 잘못 기재하고 원문의 ‘농토(農土)의 정령’을 ‘농사의 정령’으로 잘못 표기했는데 이것이 북한 책에도 그대로 게재됐다.

또 ‘아리랑’과 ‘사랑을 찾아서’를 일본에서 상영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광고 사진 인용부분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로 밝혀졌다. 조교수가 일본 영화지 ‘키네마 준보’로부터 얻어 게재했던 이 사진을 북한측이 재인용하면서 사진의 출처를 조교수 책의 같은 쪽에 실린 다른 인용문 출처로 착각, ‘매일신보 1928년 4월10일’자로 쓴 것. 매일신보의 해당일에 이 사진은 물론 실리지 않았다.

조교수는 북한 책에 실린 ‘독립군 시절의 나운규와 친구들’ 사진에 대해서도 “나운규의 지인들로부터 직접 얻은 것으로 내 책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책이 ‘나운규가 러시아 백군에 입대했다가 북간도로 돌아간 시기는 1920년 1월경이었다’고 쓴 대목에 대해서도 “나운규의 친구였던 윤봉춘의 회령만세사건으로 인한 복역기간을 계산해 내가 처음으로 제시한 가설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도서 유통사인 ‘레인보 통상’에 따르면 평양출판사는 문화예술 관련 서적을 주로 펴내는 중견 출판사. ‘아리랑’(1992년), ‘민요 따라 삼천리’(1995년), ‘민속을 통해 보는 시와 노래’(1996년),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1997년) 등을 펴냈으며 모두 일본에 소개됐다.

조교수는 “북한이 한국 출판물을 참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적극적인 남북한 간의 자료교환과 공동연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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