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피해 損賠시효 95년12월부터"…서울고법 첫 결정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80년 5·18사건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한인 소멸시효는 5·18특별법이 제정된 95년 12월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3년) 이내인 98년 12월까지 소송을 낸 피해자들이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대법원은 그동안 소멸시효를 신군부의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부터 계산, 3년이 지난 84년 1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 등으로 신군부의 불법행위로 재산을 빼앗기고 투옥당한 피해자들의 재산 반환과 위자료 지급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이흥복·李興福부장판사)는 15일 전 전북 전주 완산여상 교사 이상호(李相浩·49)씨가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지난달 14일 ‘국가는 원고 이씨에게 2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대해 2주 동안 국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강제조정 결정이란 소송 당사자간에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재판부가 직권으로 조정한 뒤 2주 안에 이의가 없으면 그대로 확정되는 것으로 확정시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95년 12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까지 정지되고 그 이후부터 진행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80년 5·18 민주화 운동에 관련돼 게엄포고령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씨로서는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범죄소추(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5·18 특별법’이 제정 공포돼 시행된 95년 12월 21일 이전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제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는 법 시행일 이후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소멸시효는 95년 12월부터 3년이 지난 98년 12월에 끝나므로 그 이전인 94년에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이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며 “5·18사건에 따른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는 만큼 국가는 이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법원이 그동안 해직 기자나 교사, 언론사 등 5·18 관련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3년)의 기산점을 신군부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이나 92년 문민정부 출범 시기 등으로 보고 모두 패소 판결을 내린 것과 상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결정의 취지가 대법원 등에 계류중인 비슷한 사건의 판결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이씨는 80년 5월 완산여상 역사과 교사로 재직중 전주 신흥고 등 전북 10여개 고교생들이 ‘광주학살’에 항의하며 벌인 연대 시위의 주모자로 지목돼 체포된 뒤 학교에서 면직당하고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징역 1년의 형이 확정됐다.

이씨는 94년 11월 5·18 해직교사 및 교수들 중 처음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98년 4월 ‘5.18 특별법’에 따른 재심청구소송에서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지난해 7월 전주지법에 제기한 면직무효 확인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이수형·김승련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