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가청산금은 위법" 조합원 집단訴 파문 예고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48분


재개발사업 조합원들이 “건물 완공후 지불하도록 되어있는 청산잔금을 시공건설사가 중도금식으로 미리 징수하는 불법적인 청산금 제도 때문에 막심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시공회사 등을 상대로 대규모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시공회사들은 “가청산금 제도가 없으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가청산금 제도는 조합원이 내놓은 땅이나 집값이 공사가 끝난 뒤 분양받게 되는 집의 값어치와 차이가 날 경우 그 차이만큼의 돈을 중도금을 내듯이 미리 내도록 한 제도. 시공사들은 가청산금과 일반 분양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있다.

이 제도 때문에 대부분 영세민인 조합원들은 가청산금을 낼 경제적 형편이 안돼 중간에 분양권(이른바 딱지)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폐해를 막고 조합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95년 주택재개발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조합원의 청산금은 분양처분 고시가 된 후, 즉 집을 다 지은 뒤에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해 가청산금 제도가 폐지됐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공회사들이 여전히 받고 있는 가청산금은 법률상 부당이득인 셈. 현재 재개발사업인가를 받은 지역은 81곳에 이르러 이같은 부당이득은 10조원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 신당3구역 재개발조합 조합원 155명은 최근 재개발조합과 시공회사인 현대 동아 SK건설을 상대로 “가청산금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길음 정릉 거여 행당지구 등 17개 주택재개발조합 조합원 수만명도 ‘재산보호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가청산금 제도는 현행법상 명백한 위법”이라는 판결을 여러차례 내린 상태여서 이같은 집단소송에서 재개발 조합원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화(李在華)변호사는 “가청산금 자체가 위법한 부당이득이기 때문에 이미 돈을 지불한 조합원들도 조합과 시공사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선 시공사들도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삼성물산 재개발사업 담당자는 “가청산금 제도를 폐지한 것은 현실을 무시한 졸속 입법의 전형”이라며 “조합과 체결한 재개발사업 계약을 백지화하거나 가청산금을 안 낸 조합원에게는 분양권을 주지 않는 등 강력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건교부 주택관리과 관계자는 “현행법상 보장된 ‘재개발 사업에 필요한 경비 충당’ 명목으로 예전의 가청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하거나 가청산금 제도를 부활시키는 법률 개정안 마련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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