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씨 부부 '笑劇 30분'…석연치않은 태도 의혹 증폭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9시 07분


“진실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는 24일 오전 “우리 누구도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을 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를 불러낸 것은 진실의 힘”이라며 은근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 진실의 힘에 따라 전직 검찰총장은 그 자신을 비롯한 기존 검찰조직이 그동안 그토록 설치를 반대해온 ‘특별검사’사무실에 오후 2시50분에 도착했다.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와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온 김전총장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금화빌딩 현관에서 잠시 포즈를 취한 뒤 17층 최특검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40평 남짓한 특검 행정실에 들어선 김전총장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연씨는 처음부터 진녹색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다.

김전총장이 준비해온 A4용지 2쪽짜리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뭐라 말씀을 드리기에도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젯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의 첫마디는 2월 대전법조비리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뜻모를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던 때를 연상케 했다.

당시에도 그가 흘렸던 눈물을 누구도 진심이라고 믿지 않았다. 이날도 김전총장은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직동 내사사실을 미리 알리고 문건을 전달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라”는 계속되는 추궁에 “검찰 조직의 장래와 검찰의 명예”를 내세우며 자신과 연씨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전총장은 갖은 제스처와 얼굴 표정으로 입담을 과시해온 평소때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집사람이 옷가게에 전화했더니 전라도말로 ‘그거 700인데 400으로 입으시요이’라더라”거나 “우리 딸들이 가필된 글씨가 내 것인지 긴가 민가해 나도 알쏭달쏭한 기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위기를 알아차린 연씨가 “제가 말할게요”라고 흐느끼며 호피무늬반코트를 가져간 경위에 대해 변명을 하는 도중 함께 온 임운희(林雲熙)변호사가 제동을 걸면서 이 부부의 소극(笑劇)같은 기자회견은 3시20분경 끝났다.

특검팀 관계자는 “부르지도 않은 두 사람이 결국 자기 변명만 늘어놓으려고 이 난리를 피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부터 일선 검사들은 끼리끼리 모여 김전총장의 발표 내용과 파장을 논의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생방송을 지켜본 한 검사는 “김전총장이 언제부터 조직의 장래를 그렇게 걱정했느냐”며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려고 진실을 묻어둘 경우 더 큰 화를 자초한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전총장 부부의 이날 기자회견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비판일색이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시민입법국장은 “그가 보인 태도는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지금까지 보여온 반복적인 거짓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또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시민감시국장은 “김전총장은 이제까지 진실을 감춰오다 자진출두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태도로 의혹을 더하고 있다. 이는 국가혼란을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행위이며 특검팀도 김전총장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검 앞 거리에는 “옷로비 완전 조작 책임자 전원 문책하라! 문책하라! 문책하라!”는 한 시민단체 회원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졌다.

〈신석호·정위용·선대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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