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수사]“아무도 진실 안털어 놓는다” 검찰 고심

  • 입력 1999년 11월 1일 19시 07분


희대의 정치폭로극으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언론대책문건 사건 검찰수사는 크게 보아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사의 본류는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정형근(鄭亨根)한나라당 의원 등을 고소하면서 시작된 명예훼손 수사.

최근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의 개인 비리가 이틀이 멀다하고 잇따라 폭로되자 검찰은 이 부분에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기자가 정의원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건설업자로부터 2000만원을 받는 등 개인비리는 2차적인 검찰수사의 대상이다.

▼장기화 가능성도 높아▼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권과 야권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어려움이 많다”고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먼저 명예훼손 수사는 1일 고소인인 이씨가 검찰에 나와 고소인 진술을 하는 등 발빠르게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명예훼손 수사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의 사신(私信·3쪽)이 사라진 경위를 놓고 이종찬 부총재의 비서진과 이기자의 진술부터 팽팽하게 맞선다.

이 때문에 검찰은 참고인에 불과한 최상주씨 등 2명을 거의 48시간 가깝게 붙잡아 놓고 호되게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문건을 작성한 문기자는 물론이고 정의원 이부총재 등 사건 주역들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거나 시간을 끌고 있다.

이같이 이 사건의 본질인 명예훼손 수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예상됨에 따라 검찰은 이 사건의 곁가지라고 할 수도 있는 이기자를 일단 절도혐의로 구속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李기자부터 집중추궁▼

한 수사관계자는 “이 사건의 주역 중 어느 한명이 가감없이 진실을 말해주면 사건은 쉽게 풀릴 수 있는데 아무도 진실을 털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기자가 구속된 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진실을 말하면 이를 근거로 나머지 관련자들을 추궁, 진상에 접근하려는 전략인 셈.

수사팀은 이기자의 개인비리는 어디까지나 ‘곁가지’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권의 폭로를 무시할 수도 없어 고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기자의 30여개나 되는 통장 등 복잡한 자금거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팀을 일부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사팀은 정치권의 폭로공방전 등 미묘한 상황을 감안해 수사의 완급을 조절하려는 복안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영훈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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