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실천선언 25돌 특별대담]유재천-이강수교수

  • 입력 1999년 10월 25일 20시 01분


《1974년 10월24일에 있었던 동아일보사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당시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유신독재 아래서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자고 일어선 본격적인 언론자유 쟁취운동이었다. 우리 현대언론사에 언론자유 확대운동의 한 전기로 기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7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 25주년을 맞아 그 의의를 되새겨보는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유재천<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강수<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이강수〓언론의 역사는 정권의 억압과 통제로부터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74년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시대정신의 발로로서, 이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계기로 기자들이 젊은 지성인으로서 언론자유운동에 나서게 됐다. 오늘날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사실은 그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신정권 언론체질 바꾸려 탄압▼

▽유재천〓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朴正熙)정권은 “경제개발시대의 언론은 정부정책의 협력자이자정책시행의선도자가 돼야 한다”는 언론관을 갖고 있었다. 동아일보 등 몇 언론사는 일제시대부터 저항의 전통이 있었다. 박정희정권은 이러한언론의저항적인체질을 바꾸려고 한 것이다.

동아일보 등 몇 언론사가 이에 맞서 강력히 투쟁했으나 정권은 반대하는 언론사에 대해 교묘한 방법으로 탄압을 가했다. 결국 언론이 정권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상 언론이 굴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당시 동아일보 천관우(千寬宇)편집국장은 “한국 언론은 연탄가스에 중독됐다”고 개탄한 바 있다.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선언은 전국적으로 기자의 자유언론 투쟁에 불을 붙였고 2개월 후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동아일보에 대해 언론 사상 유례 없는 광고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동아일보에는 온국민의 격려광고가 이어졌다. 정부와 언론간의 투쟁에서 특정 언론사에 대해 전국민이 지지와 성원을 보내며 집단행동에 나선 사건은 세계 언론 사상 일찍이 없었다.

▽이〓당시에는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내는 것이 지성인과 민주시민의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자기네 대학과 교수들이 격려광고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대학교수들이 학교 이름을 밝히며 격려광고를 내는 일도 있었다.

▽유〓그 당시 나와 이 자리의 이교수 등 11명의 언론학자들도 격려광고를 냈었다. 고심 끝에 실명(實名)으로 광고를 냈더니 중앙정보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이것저것 조사해 가기도 했다. 언론학자들이 그렇게 단합해서 언론자유운동에 나선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런 불행한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

▽이〓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기능이 많이 약화됐다. 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와 제8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정권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서울대생들이 언론인에게 경고장을 보내는 등 대학가에서 언론의 무기력함에 대한 불만과 불신, 규탄의 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언론의 자화상에 대한 반성으로 71년 4월15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선언’을 했다. 이것이 최초의 언론인 자유선언이다. 이는 다른 언론사에도 파급됐고 급기야 기자협회가 ‘언론자유수호 행동강령’을 제정하게 됐다. 그러나 그 선언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72년 유신헌법이 만들어졌을 때 신문협회가 지지를 선언했을 정도로 언론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듬해 동아일보 기자 50여명이 신문의 파행제작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였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10·24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10·24선언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첫째, 언론자유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제1의 조건이라는 투철한 의지를 구현했다는 점 둘째, 이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 셋째, 언론자유는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힘들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의 한국언론을 보면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이 상당부분 단절돼 있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 87년 6·29선언까지 20여년간 한국언론은 제도권 언론으로 안주해 왔다. 정부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검열하는, 즉 사(私)검열의 단계까지 갔었다.

언론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참다운 언론정신이 계승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동아일보의 지면을 보면 곳곳에서 10·24선언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박정희 전두환(全斗煥)정권은 불법적으로 집권한 것을 합리화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50년 만에 진정한 민주세력이 집권해 정통성을 갖추고 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겠지만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진정한 언론자유를 누리는 길이다.

▽유〓10·24선언과 광고탄압 등 일련의 사건들은 동아일보 기자 130여명이 회사를 떠나는 불행한 사태를 낳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떠나 이들과의 화해는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회사가 지금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과 협의를 통해 화해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민주정부하에서 언론은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정부도 간접적으로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 진정한 민주정부라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 언론도 스스로 정부의 간섭을 수용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10·24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다.

언론이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떳떳해야 한다. 투명한 경영, 도덕성 제고 등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질적 고급지-지성의 신문 기대▼

최근 동아일보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설의 논조도 시시비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획기사가 많아진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기사는 여전히 발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동아일보의 전통은 권력에 맞서 시민의 권리를 지키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동아일보에 대한 국민의 기대,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긍심도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정치적 비판기능이 약화되면서 신문의 위상이 낮아졌다. 질적인 고급지, 지성인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 언론학자로서 동아일보에 거는 기대다.

▽유〓현재 한국의 신문이 불신을 받고 있는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군사독재시대에 형성된 제도언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둘째, 언론의 비판정신과 파수꾼 기능 결여 셋째, 흥미위주의 지면제작 넷째,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공론의 기능 결여 다섯째, 언론기관 자체의 권력기관화 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10·24정신을 되새기고 도덕성 정의감 전문성 등을 길러야 한다.

▽이〓언론은 공적인 저널리즘과 사적인 저널리즘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언론이 정부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시민의 입장에 서서 공론의 장(場)을 제공하고 엄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공적인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일부 언론의 사례는 신문이 공론의 장을 폐쇄하고 소유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적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신문이 공적 저널리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자들이 언론 외적인 자유와 더불어 언론사 안에서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10·24선언은 당시 동아일보 안에서 기자들이 내적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 신문은 사실보도에 충실해야 한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 C P 스콧의 “사실은 신성하다. 의견은 자유다”라는 말처럼 사실에 입각해 보도하고, 주장은 사설에 정정당당하게 담아야 한다.

▼제도 자체보다 의지가 중요▼

▽유〓기자의 내적인 자유와 관련해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일부 시민단체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주의 편집권 침해에 대한 제도적 견제장치로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언론문제를 법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본주의 자유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유수의 신문사를 보더라도 편집권의 자유는 소유지분보다는 발행인과 편집국장의 언론자유에 대한 신념에 달려 있다.

인터넷의 보급 등 신문환경의 변화로 종이신문은 도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간편성 가독성 심층보도 등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동아일보가 확고한 편집정책을 정립하고 ‘동아일보가 제공하는 정보는 믿을 수 있다’는 신뢰성을 독자들에게 심어준다면 무궁하게 발전할 것이다.

▽이〓동아일보가 70년대 자유언론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의 사시(社是),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 정신의 구현에 투철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그 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한다면 한국언론의 미래는 밝다.

〈정리〓윤종구기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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