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밸리’ 세계적 영상업체 꿈 영근다

  • 입력 1999년 1월 3일 20시 34분


유행과 과소비의 거리처럼 알려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신사동 일대가 ‘3차원 만화영화 산업(일명 3D애니메이션 산업)’의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벅스라이프’ ‘개미’ ‘토이스토리’처럼 한 편에 수천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미래형 영상산업을 겨냥한 ‘문화 게릴라’ 1백여업체가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압구정밸리’. 미국의 벤처단지 ‘실리콘밸리’ 그리고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통신회사가 집결한 ‘텔레콤밸리’, 포이동의 소프트웨어단지를 의미하는 ‘포이밸리’에 이은 또다른 애니메이션 기지가 형성됐다.

‘압구정밸리’는 도산대로에서 지하철 3호선 신사역까지 2∼3㎞ 구간과 주변지역. 간판을 달지 않고 소규모로 활동하는 업체까지 줄잡아 1백여 컴퓨터그래픽 업체가 이곳에 들어섰다.

‘압구정밸리’는 ‘IMF직격탄’이 터지면서 탄생했다. 이 지역 벤처기업들의 주업종은 광고그래픽(CGI)이었다. 대형 광고대행사와 프로덕션을 따라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게 95년쯤. 그러나 IMF후 많은 업체들이 부도 회오리에 쓰러졌다. 상당수가 생존의 몸부림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 업종을 전환했고 새 업체들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압구정밸리’가 구축되었다.

3D 애니메이션은 최근 세계의 영화팬을 사로잡으며 한편에 수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미래의 유망산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

서울 목동에 있다 지난해 7월 이곳으로 회사를 옮긴 ‘블루라인’ 대표 최백(崔栢·38)씨는 이곳을 ‘친정’에 비유한다. 최씨는 “다른 곳에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많지 않아 압구정밸리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업체간 ‘품앗이’ 문화가 발달해 기술이전이 쉬운 것도 장점. 최씨가 기획중인 3D애니메이션 ‘꿀꿀이특공대’는 현재 20분짜리 데모버전(시범판)이 완성단계. 최씨는 이 작품을 올해 초 미국 등에 선보여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블루라인 역시 97년까지만 해도 광고그래픽이 주종. 연간 4억원을 벌어들이면서 업계에서는 ‘잘나가는’ 축에 속했다. 그러나 최씨는 지난해초 3D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하면서 과감히 광고그래픽에서 손을 뗐다. 한국 최초로 3D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빚을 내서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성공을 확신한다”며 웃었다.

‘페이스’의 대표 한동일(韓東壹·27)씨는 3억원을 들여 TV용 3D애니메이션 ‘붕가부’의 2분짜리 예고편을 만들었다. 현재 프랑스와 일본 등지에서 총 26편에 대한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으며 거의 성사단계에 와 있다. 한씨는 “주위에서는 만류했지만 이 길에 들어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압구정밸리’가 정작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씨나 한씨같은 ‘투자형’말고도 3,4평짜리 공방마다 적게는 1명, 많아야 3명도 채 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문화 게릴라’들이 둥지를 틀고 도전의식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쪼들리는 시설과 자금을 오직 ‘3D’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게릴라’들. 이들은 한국을 세계적인 영상산업국으로이끄는견인차가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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