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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27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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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학동의 역사와 사회학적 의미를 살펴본 논문이 나와 주목을 끈다.
진양교 서울시립대교수(건축학)가 최근 발표한 ‘서울 황학동의 공간과 일상’. 이같은 특정 공간 연구는 ‘큰 것’에만 매달려온 기존 도시계획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진교수는 ‘청량리의 공간과 일상’을 펴낸 적도 있다.
그럼 왜 황학동인가. 이곳은 비제도권 경제공간이다. 제도권 경제의 빈틈을 잘 메꿔주는 곳이며 실패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재기를 꿈꾸는, 서민들이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진교수는 그래서 “비제도권적이지만 서울에 꼭 필요한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논문은 이같은 시각에 기초해 황학동의 정체성과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 있다.
황학동을 일단 중고품시장으로 명명한 진교수는 조선시대말까지 그저 논밭 뿐이었던 이곳이 어떻게 시장으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황학동이란 지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일제말기이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은 6·25 직후. 황학동 인근 청계천변에 월남민들의 판자집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고물상들이 모여들면서부터다.
진교수는 이에 대해 “조선시대에 상인들의 주거지역이었던 인근 왕십리의 전통이 이곳 황학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학동은 70년대 청계천 복개와 새마을 운동으로 고물상이 서서히 밀려나면서 골동품 전문시장으로 변해나갔다. 체계적인 상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초엔 골동품상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으로 옮겨가면서 그 빈자리에 모터와 시계 중심의 중고품점이 모여들어 세를 과시하게 되었다.
최근엔 눈에 띄게 늘어난 노점 벼룩시장이 기존 중고품 시장과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진교수는 이를 두고 ‘황학동의 정체성 혼돈’이라고 설명하고 “앞으로 노점들이 중고품 시장을 누르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것인지 두고볼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만의 독특한 시장공간 황학동. 이곳이 비록 제도권 밖에 있지만 지금의 공간과 구성원을 잘 지켜 그 살아있는 역동성은 제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진교수의 생각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