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총격 요청」파문]政街 「핵폭풍」예고

  • 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57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비선조직의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은 정치권사정을 둘러싸고 경색된 정국을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비록 미수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북한을 이용, 우리군에 대한 도발을 유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경악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여야관계를 냉각시켰던 국세청세금모금사건이나 정치인사정 의원영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이 주도한 일련의 북풍공작사건들과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사안은 그래서 여야간 정치적 절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는 곧 현재로서는 정국에 미칠 파장의 진폭을 가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그 향배를 가를 핵심관건은 이회창총재가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느냐다. 여권은 오정은(吳靜恩)씨 등 구속된 3명이 이총재의 최측근인사와 접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이총재의 사전인지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만일 이같은 추정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정국은 핵폭풍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총재는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총재직 퇴진과 정계은퇴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이는 한나라당 내부의 재편에 이어 정국구도의 ‘새판짜기’라는 연쇄반응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이총재의 주장대로 이번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측근인사의 개입의혹이 짙고 오씨 등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혐의’를 완전히 벗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안은 성격상 여야 모두에 ‘배수진’을 친 사투를 요구하고 있다. 여권은 여권대로 국세청사건보다 훨씬 강도높은 기세로 이총재의 소환조사와 ‘외환죄(外患罪)’의 적용까지 거론하고 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반민족적 범죄’라는 것이 여권의 확고한 인식이다.

이총재와 한나라당은 정치적인 사활이 걸려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력대응한다는 반응을 나타내면서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섣부른 움직임은 파국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 중진인 박관용(朴寬用)의원의 조카가 이 사건의 주역이라는 사실도 큰 부담이다.

여야의 이같은 움직임은 추석연휴를 계기로 정국정상화의 숨통을 틀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정치인사정에 총격요청사건까지 겹친 정국의 혼돈양상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긴 조정기를 거쳐야 해소될 것 같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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