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시의원「초라한」선생님…여교사를 아가씨라고 호칭

  • 입력 1998년 7월 19일 19시 05분


“교무실이 다방도 아닌데 교사에게 커피심부름을 시키다니…. 정신 못차린 정치인들 즉각 퇴출시켜라.”

PC통신에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추태를 꾸짖는 네티즌들의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초등교 교무실에서 일직교사에게 커피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결례를 지적하는 교사에게 ‘괘씸죄’로 경위서까지 쓰게 한 일부 시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줄을 잇는 것.

12일 부산 기장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합동연설회가 열렸던 H 초등학교. 연설회에 참가했던 한나라당소속 시의장 등 9명의 시의원들은 교무실에 들어와 일직교사 배모씨(36)에게 “아가씨 커피 한잔씩 타줄 수 없어요”라고 요구했다. 또 모 시의원은 교감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등 소란을 피웠다.

당황한 배씨의 연락을 받고 주임교사 김모씨(61)가 달려와 “그 자리는 아무나 앉는 게 아닙니다”라고 지적하자 일부 시의원이 불쾌하다는 듯 “뭐 이런 학교가 다 있어”라며 수행비서에게 “저 사람들 이름적어”라고 한 뒤 교무실을 나갔다.

다음날 시의원 조모씨는 관할 교육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교사들의 ‘불손’을 경고했고 교육청은 담당과장을 학교로 보내 해당교사들에게 경위서까지 쓰도록 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교조 부산지부는 15일 항의성명을 내는 한편 부산시의회를 방문해 관련 시의원들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예상외로 파문이 확산되자 16일 조의원이 해당교사들에게 공개사과를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부산 H여고 박모교사는 “정치인이 교권을 우롱하고 교육당국은 사건무마에만 급급한 현실속에서 어떤 교사가 자부심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