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仁村강좌 특강]권위주의 벗고 국민에 가까이…

  • 입력 1998년 6월 30일 19시 3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0일 고려대 인촌기념강좌 특별강연은 현직 대통령이 국내 대학 강단에 처음으로 섰다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권위의 정점인 현직 대통령은 반(反)권위의 중심인 대학가에서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현직 대통령이 대학가에서 기피와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가장 모멸적인 화형식의 객체(客體)가 되는 일도 많았다. 또 대통령의 대학졸업식 참석마저 여의치 않은 시절도 상당기간 지속됐다.

이런 점에서 김대통령의 이번 특강에는 권위주의정권 시절 부자연스럽고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정치문화와 대학문화의 관계를 청산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 권력의 탄압과 박해 속에 정치적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던 김대통령에게 똑같이 권력의 탄압을 받아왔던 대학가는 정신적으로 ‘동일체 의식’을 심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특강 초청에 흔쾌히 응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김대통령이 연설이 아니라 강의형식으로, 그리고 강연을 칠판에 강연제목을 쓰는 것으로 시작한 것도 김대통령 나름대로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김대통령이 이날 강연의 주제를 ‘우리 민족의 저력과 앞날’ 두가지로 잡은데서도 드러난다.

이런 형식적 요소와 함께 김대통령은 ‘6·25 이후 최대 국난’인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의 절박성과 당위성을 보다 현장감있게 전달하는 장(場)으로 특강을 활용했다.

김대통령이 이날 그동안 여러차례 강조해 왔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화두(話頭)를 통해 위기극복을 국민에게 또다시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통해 김대통령은 새로운 한 시대를 여는 진통이 만만치 않음을 국민에게 이해시키려 했다.

특히 과거에 경험한 적이 없는 은행퇴출이라는 고단위 처방으로 한국사회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고 북한잠수정의 영해침범사건으로 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시험대에 올라 있는 시점인 만큼 김대통령은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김대통령은 특강을 통해 그동안 추진해온 각종 정책과 앞으로 추구할 정책방향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개혁은 간단없이 진행돼야 하며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것이었고 대북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되 인내를 갖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대통령은 정부공식행사는 아니면서도 공개적인 기회를 통해 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개혁관과 대북관을 재확인할 필요를 느끼고 이번 특강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김대통령의 인촌기념강좌 특별강연이 한국의 강연문화, 특히 현직대통령의 대학가 강연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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