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고비 함께넘자③]기득권층부터 고통분담 나서라

  •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54분


부실채권 정리 등 금융 기업 구조조정에 드는 비용은 1백조∼1백5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결국 재정지출(국민세금부담)과 외자도입을 통해 마련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떠안는 막대한 재정부담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 (남덕우·南悳祐전국무총리)

한편 구조조정은 다수 국민들에게 단기적 실업증가와 소득감소도 떠안긴다. 많은 국민들은 이미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고 있다.

국민들이 고통분담에 공감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기업 금융권 정부 정치권 등의 기득층이 응분의 고통을 나누지 않으면 안된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중요한 것은 가진 사람들과 정부가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도록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고통분담이며 그래야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

정부는 국민세금으로 부실은행들의 증자를 지원했다.

은행들은 부실기업에는 협조융자를 하면서도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흑자기업들에 대한 대출은 기피하고 있다.

‘주인 없는’ 금융기관과 정부투자기관 등이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명예퇴직자들에게 1억∼3억원씩의 퇴직가산금을 주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네티즌 8백68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9%는 “고통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고통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 분야를 정치권(38.5%) 재벌(28.2%) 정부(19.2%) 국민(4.8%)의 순으로 꼽았다.

정치권은 국회의원수 줄이기와 긴축의 솔선수범 등 정치개혁에 진지하게 나서지 않고 있다. 소모적 정쟁, 민생 및 경제입법 소홀 등이 국민들의 위기극복 의지를 이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와 공공부문은 아직도 허리띠를 덜 졸라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전면적 개혁,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 공기업 및 산하기관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매각 등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또 빈익빈 부익부를 완화하기 위한 세제개편과 세정(稅政)강화 등이 요구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부담’이라고 하지만 서민층과 부유층 간에는 고통의 정도가 현격히 다르다.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부담을 끌어들인 기업주와 금융경영자 등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정부의 고위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특히 재벌 등에는 도덕적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 보다 탈세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치부(致富)에 불이익을 주는 경제적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경식(姜慶植) 김인호(金仁浩)씨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벌 은행가 그리고 다른 관료들이 마치 두사람 때문에 경제가 붕괴됐고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는 것처럼 처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방만한 경영에 제동을 걸지 못했던 주주들도 당연히 부담을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태국 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출자를 할 때 기존주주의 주식 1천주를 1주로 줄여버린다. 우리 정부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출자하면서 8.2:1로 감자(減資)를 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책임추궁이다.

한편 각 부문이 고통분담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좀더 분명한 비전을 제시, 국민이 느끼는 불안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구조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끝나고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이라는 설득력있는 비전이 제시된다면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있다.”(회사원 최병일·崔炳日씨)

남전총리도 “국민이 구조조정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철·이용재기자〉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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