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비자금 수사 종결]「정치논리」에 밀린「법의 심판」

  • 입력 1998년 2월 23일 19시 48분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 비자금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는 한마디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정치적 처리’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진상을 ‘해명’하고 법적 심판은 모두 면제했다. 검찰측은 “검찰수사로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사안을 법의 논리만으로 풀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공식발표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와중이기 때문에 고발사실에만 국한해 조사했고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했다”며 아예 한계를 정해둔 수사였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검찰은 사실관계 규명과 법적 판단에서 모두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검찰은 우선 김차기대통령이 기업체에서 1천49억원을 받아 7백여개의 가차명 계좌에 은닉했다는 고발내용에 대해 “대부분 사실과 다르며 처조카 이형택(李亨澤)씨를 통해 55억여원을 정치자금으로 관리한 사실만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그러나 확인된 55억여원에 대해서는 ‘당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라며 추적하지 않아 수사의지가 없었음을 드러냈다. ‘20억+α’설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20억원 외에 3억3천만원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과 청와대 비자금 계좌에서 평민당 사무총장과 이씨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이 정책수행비 등으로 사용한 자금 중 일부가 야당 정치인들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그 돈이 특별당비 형태로 납부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김차기대통령과의 관련성은 부인했다. 비자금계좌 추적 경위에 대한 수사도 축소의혹이 많다. 검찰은 청와대 배재욱(裵在昱)사정비서관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한 서울지검 검사는 “일개 비서관 개인의 결단과 능력만으로 유력한 대통령후보의 뒤를 캐는 일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느냐”고 반문한 뒤 “십중팔구 권력의 최고위층과도 관련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적 판단도 미흡했다. 검찰은 권노갑(權魯甲)전의원 등이 삼성 등에서 받은 39억원에 대해 ‘당 운영 및 선거경비로 대가성이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같은 결론은 정치자금에 대해서도 ‘포괄적 뇌물죄’를 인정해온 최근의 검찰 및 법원의 태도와도 배치된다. 검찰주변에서는 이제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대선자금이 밝혀져도 처벌하기 어렵게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배비서관 등을 불입건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서울고검의 중견검사는 “엄정중립을 지켜야 할 사정비서관이 정치권과 결탁해 저지른 범죄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수사는 어려운 정치 경제상황을 내걸고 원칙을 저버린 잘못된 선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수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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