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지지율 초기94%-요즘 「조사못할 수준」

  • 입력 1998년 2월 22일 21시 51분


임기초 90%의 지지, 임기말 ‘한자릿수’의 지지율.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대표 노규형·盧圭亨)가 문민정부 출범 직후부터 매달 6백∼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전화여론조사 결과다. 임기초 김대통령의 높은 인기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호응에다 재산공개 및 각종 사정작업, 군(軍)의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등 잇단 개혁조치로 지지율은 93년 7월 94%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핵사찰을 둘러싼 대북(對北)정책의 혼선, 성수대교 붕괴(94년 4월),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건(95년 4월), 삼풍백화점 붕괴(95년 6월) 등 대형사고가 이어지면서 95년 가을 30%선까지 떨어졌다. 김대통령의 인기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수사가 시작된 95년 11월 이후 다시 70%대로 회복됐으나 이것도 잠깐, 비리사건에 따른 장학로(張學魯)청와대부속실장의 구속에 이어 노동법개정파동과 한보사태, 차남 현철(賢哲)씨의 국정개입비리 등으로 인기는 수직하강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아예 지지율 조사의 의미조차 없어졌다. 0%에 가까운 수치였기 때문이다.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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