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보증기간인 내구연한을 넘긴 TV가 자체적으로 폭발해 화재를 일으켰다면 제조사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첫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0부(재판장 박인호·朴仁鎬부장판사)는 22일 TV폭발로 인한 화재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D보험사가 제조사인 S전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판결을 깨고 “S전자는 D보험사에 구상금 5천6백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S전자는 ‘문제의 TV가 내구연한(5년)을 1년이나 넘긴 뒤 폭발했으므로 제조사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나 정상적인 수신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제품의 합리적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상 국민은 단순히 내구연한을 넘긴 TV를 위험물로 여기지는 않는다”며 “제조회사는 내구연한을 넘긴 TV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소비자에게 경고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입법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는 ‘제조물 책임(PL)’법의 기본 원칙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다른 가전제품의 유사한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성호(朴成浩)변호사는 “소비자단체와 기업간의 찬반의견이 엇갈려 PL법 제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번 판결은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D보험사는 96년 7월 종합보험 가입자인 김모씨의 집에서 90년산 S전자 16인치형 TV가 정상적인 수신상태에서 갑자기 연기를 내며 폭발해 화재를 내자 김씨에게 보험금 5천6백여만원을 지급한 뒤 S전자를 상대로 구상금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는 패소했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