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전문가 대담]『첫 정권교체 걸맞는 경제개혁시급』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헌정사상 여야간에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한국의 민주화가 한층 성숙됐다는 외국의 평가도 있다.특히 21세기 새 밀레니엄(Millennium·1천년)을 맞는다는 점에서 김대중(金大中)정권은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졌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절박한 금융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최악의 경제상황이 기다리고 있어 새 정권의 국정운영은 처음부터 시련과 고난속에서 시작될 전망이다. 이번 대선의 의미와 새 정권의 과제 등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신명순(申命淳)교수와 일본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고바야시 요시아키(小林良彰)교수의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대담은 19일 본사 회의실에서 있었다.》 ▼신교수〓「12.18」 대선은 헌정사상 첫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정치 발전에 새 장(章)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어렵습니다. 정권교체가 앞으로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도 93년 만년 여당이던 자민당이 30여년만에 사회당 등 야당에 정권을 내주었죠.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정권교체를 평가해 주시죠. ▼고바야시교수〓반영구적으로 집권하는 듯했던 자민당은 93년 내부의 분열이 심각해지는 바람에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게 됐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었지요. 그러나 일본의 야당은 정책 수행능력이 부족해 많은 혼란을 빚은 끝에 1년이 채 안돼 다시 자민당으로 정권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한국 헌정 50년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번 정권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제 그에 걸맞은 경제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다만 한국이 맞닥뜨린 경제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공백 없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금융위기 등 경제난의 타개가 급선무인 새 정부는 여소야대의 국회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또 선거과정에서 김대중대통령당선자가 속한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속한 자민련이 「DJP연합」을 했으나 두 당의 이념이 다르고 정당구성원의 배경도 달라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도 과제입니다. 고바야시교수께서는 선거제도와 유권자의 투표행태 등에 관해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김당선자가 1.6%라는 박빙의 차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고바야시〓크게 3가지로 봅니다. 무엇보다 야당후보는 단일화를 이룬데 반해 여당이 분열돼 야당후보의 당선을 도왔습니다. 둘째는 한반도에서 냉전구도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여당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경제안정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먹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그에 따른 남북한 경제격차가 커져 이제 야당에 정권을 맡겨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된 거죠. 셋째로 가장 큰 원인은 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경제정책의 실패입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선거운동기간 당시에는 여당이 아니었지만 경제정책실패에 따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앞으로 닥칠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IMF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미래의 지도자로 야당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밖에 △이회창후보가 김당선자만큼 강한 지역적 지지기반이 없었고 △김당선자만큼 카리스마를 가진 후보가 없었으며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김당선자가 줄곧 선두를 지켜와 「이기는 말에 걸자」는 심리가 작용하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신〓김당선자의 승인(勝因)에 대해 보충하자면 충남북에서의 약진을 들 수 있습니다. 김당선자가 각각 48.3%, 37.4%라는 높은 지지를 얻은 것은 김종필자민련명예총재를 지지하던 표심이 그대로 김당선자에게 쏠렸기 때문이죠. 또 경남북에서 김당선자가 각각 11.0%, 13.7%의 표를 얻은 것은 이 지역출신의 여당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지역주의가 여전히 선거를 크게 좌우한 것을 보여줍니다. 역대 선거에서 여당이 거푸 승리할 수 있게 했던 「조직과 자금」이라는 변수의 영향이 적었던 것도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선거풍토였습니다. ▼고바야시〓여당후보 중에 영남출신이 없어 지역주의가 약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종래의 지역주의가 여전히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김당선자가 영남권에서 두자릿수의 지지율을 얻어 앞으로 지역주의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금권 관권선거 시비가 사라진 것은 한국정치가 진일보했다는 증거입니다. 일본의 경우 솔직히 과거 5∼10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이 점에서는 한국정치가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한국정치에서 TV토론이 제도적으로 정착됐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미디어선거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없어졌으며 인원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자 선거과정에서 각종 불법 탈법사례도 줄어들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제 한국인은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신〓집권당이 자유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 것도 처음으로 정치발전의 단계를 높였습니다. 다만 최초의 실험이 여당의 분열로 이어져 안타깝게 됐습니다. 이같은 행태는 여당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의 경선 제도화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권선거가 거의 소멸한 데는 대규모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여론조사 및 TV토론을 활성화한 선거법개정 등 제도적 보완의 힘이 컸습니다. 이번 대선에는 올해의 독특한 경제상황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올 초에 터진 한보사태로 지난 14대 대선때 사용된 막대한 자금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IMF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경제위기하에서 정당들이 과거처럼 돈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재벌들도 IMF 한파속에서 「제 코가 석자」였기 때문에 돈줄이 될 수 없었습니다. 가히 선거혁명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이번 선거과정에서 나타났지만 과거 선거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 현상도 많았습니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폭로 비방과 확인하기 어려운 흑색선전이 선거운동기간 내내 계속됐고 정치권 전체가 불신을 받았던 거죠. 아직 개선해야할 점도 많다고 봅니다. ▼고바야시〓한국이나 일본이나 정당의 개인화 방지가 급선무라고 봅니다. 국가적 정책을 개발하는 정당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정당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시스템이 개선돼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정당에 대한 국고지원을 늘리자 파벌의 폐해가 줄어들었습니다. 돈을 끌어오는 파벌보스의 입지가 약화됐기 때문이죠. 정당이 정책을 개발하는 공당(公黨)으로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고보조금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TV토론회와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답변시간 1분∼1분30초로 구체적인 정책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짧았고 그나마 대부분 상대후보를 공격하는데 급급했습니다. 공약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신〓후보들이 제시한 공약 중에는 IMF체제하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공약을 제시하는 구태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당의 정책개발 기능을 높이기 위해 정당에 제공하는 보조금은 경상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정책개발비로만 사용토록 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고바야시〓이번 대선에서는 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경제위기의 극복방안을 놓고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새 정부가 해결해야할 초미의 과제이기도 하구요. 먼저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 단순히 순환적으로 찾아오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걸 인식해야 합니다. 정경유착을 끊고 차관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전략도 바꾸어야 합니다. ▼신〓그렇습니다. 이제 김당선자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해소와 경제회생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정치권에도 있다는 지적이 높았습니다. 정경유착 등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이지요. 그런데 야당은 과거 집권당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해 줄곧 비판해왔고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집권을 했으니 실천해야지요. 구체적으로 비대해진 재정경제원의 조직과 기능을 재조정하고 청와대 비서실을 축소해 내각기능을 강화하는 행정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고바야시〓일본은 2차대전 패전후 맥아더사령부가 재벌을 해체,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습니다. 한국도 오너(사주)경영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벌개혁이 필요합니다.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로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만큼 이제 경제민주화를 높이는게 필요합니다. ▼신〓한국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외국투자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뢰구축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최근 한국정부는 IMF체제하에서 급박한 상황에 쫓겨 매일매일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있어 혼란스러워요. 김당선자는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먼저 인식하고 정책대안을 수립해야 합니다. 김당선자는 앞으로 경제구조 조정과정에서 많은 저항을 받을 것입니다. 이를 국민화합적 분위기로 극복해야 합니다. 이는 가신정치, 특정지역 중심의 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고바야시〓김당선자는 네번째 도전해서 성공했습니다. 오랜기간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 선거과정에서 최근에 가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측근들에 좌우되는 정치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할 걸로 생각합니다. 그래야 김대통령과 차이가 있다는 걸 호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뢰를 말씀하셨는데 정경유착이야말로 외국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대표적인 나쁜 토양입니다.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와 유착돼 있어 공평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한국기업들은 외국에 활발히 투자할 수 있는데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에서의 이같은 불공평함 때문에 투자를 하지않아 외화가 들어오지 않고 따라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IMF가 정해놓은 기본방침에 따라 경제를 운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먼저 IMF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정책 권고와 관련해서 IMF는 기본적으로 경영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돈을 빌려주는 만큼 꿔간 측의 경영상태를 점검하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점검에서는 특히 단기적인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중하류층의 실업 등으로 한국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IMF와의 협약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만 외교적 노력의 강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IMF지원과는 별도로 미국 일본 정상들과 빨리 만나 새로운 지원을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김당선자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하며 취임때까지 공백기간을 가져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이번 경제위기만 잘 극복하면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활할 것입니다. ▼신〓93년초 김영삼(金泳三)정권이 처음 출범했을 때 한국국민은 군사정권때와는 다른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실망과 분노 뿐입니다. 헌정사상 첫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의 정치발전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고바야시〓감사합니다. 〈정리〓구자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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