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기업의 법정관리와 화의신청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규홍·李揆弘 부장판사)사무실에는 요즘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난 1월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삼미 대농 기아그룹 계열사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데다 올들어 기업의 화의신청도 급증하는 바람에 재판부의 업무량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
올들어 29개사가 새로 법정관리를 신청, 현재 민사합의50부가 관리중인 기업은 모두 66개에 이른다. 진로 쌍방울 등 화의절차가 진행중인 기업 36개를 합하면 모두 1백2개 기업의 운명이 재판부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법정관리 기업들의 자산을 합하면 모두 33조5천5백16억원. 이는 현대 53조, 삼성 51조, LG 38조, 대우 35조원에 이어 재계 5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화의신청 기업들의 자산총액 6조원까지 합하면 3위 수준이다.
이를 두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경제를 진단한 최근 특집에서 『한국인들은 오늘날 유일하게 번영하는 재벌은 서울지방법원뿐이라고 자조한다』고 보도했다.
민사합의50부에는 한보그룹의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배석판사 1명이 늘어나 이부장판사를 포함, 모두 4명의 판사가 일하고 있지만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
재판부는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재산보전처분결정, 회사의 실사(實査), 회사정리계획안 인가와 집행 등 전과정에서 회사의 결정을 일일이 감독하고 승인해야 한다.
가령 1천만원이 넘는 지출에 대해서는 모두 도장을 찍어야 하고 임금인상이나 퇴직금 지급, 신규투자 등 모든 기업활동에 대한 승인을 해줘야 한다.
이 때문에 판사실에는 회사관계자와 채권은행단 변호인 등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찾아와 증권사 객장을 방불케 한다. 정준영(鄭晙永)판사는 『지방에도 법정관리가 많이 늘어 지방 판사들의 문의전화를 받는 것도 큰 일거리』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가 선임하는 회사의 재산보전관리인 자리는 명예퇴직 등으로 현직을 그만둔 전문경영인들의 경쟁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재판부에 지원서를 낸 사람은 지난달 한국경총 부설 고급인력정보센터에서 개설한 법정관리인 기본교육과정을 마친 1기생 55명을 포함, 모두 80여명이나 된다.
〈신석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