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아르헨티나 11년거주 유태선씨

  • 입력 1997년 10월 20일 07시 47분


86년 지구 저쪽 가장 멀리 떨어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정말 비장한 심정이었다. 경제적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자식들을 자유롭게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이민의 큰 이유였다. 큰아들 승준이(18), 둘째아들 재웅이(16)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어서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제 고교 3년생인 승준이는 학교성적이 아주 좋아서 공부문제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게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곳 교민중에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한국에서처럼 자식들이 법대 의대에 가주길 바라지만 외국에서 공부해 사고방식이 다른 아이들이 부모의 그런 태도를 좋아할 리 없다. 이때문에 부모 자식간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 의류업 등으로 많은 돈을 번 일부 교민은 『공부하는 것보다 사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낫다』며 자식에게 사업을 권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영향력이 있는 변호사 교수 회계사 등 전문직종으로 진출한 교민수가 적은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선 고교 3년생들도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수업이 끝나면 대개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농구 등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한다. 부모들도 조언만 할 뿐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립심과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한 해에 두세번 사업차 한국에 갈 때마다 한국 고교생들의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견디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청소년들이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꿈과 소질을 키울 수 있도록 부모들이 의식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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