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박장 현지취재]아메리칸드림 포커에 날려버려

  • 입력 1997년 8월 23일 20시 25분


지난 9일 밤11시.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커머스 카지노. 한 포커테이블에서 손님들끼리 베팅 경쟁이 벌어졌다. 한국유학생 한명이 카드가 돌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수백달러를 걸었다. 그 판은 결국 중국인에게 넘어갔다. 유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곁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패는 잘 들어오는데 운이 안 따라주네』 주변 수백개의 테이블에는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듯 각국 사람들이 모여 도박에 열중했다. 그 가운데 60% 이상이 동양인. 교민 박모씨(42)는 『한국인이 전체 손님의 15%가량을 차지한다』고 귀띔했다. 딜러 가운데 70%가 동양인이며 한국인 딜러도 10% 정도.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주로 즐기는 게임은 포커. 한국인들은 최소 1백달러짜리 칩을 사용하는 고액손님 전용룸의 단골이다. 그곳에서 10분 거리인 바이시클 카지노에서도 역시 적잖은 한국인들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한국교민들은 『「도박병」에 걸린 일부 교민이나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라스베이거스보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카지노에서 신세를 망친다』며 『로스앤젤레스 인근 카지노가 한인사회를 갉아먹고 있다』고 한탄했다. 유학생 김모씨(26)는 『로스앤젤레스 카지노는 집과 거리가 가까워 돈이 떨어지더라도 구해서 금방 다시 갈 수 있다는 점이 결국 유학생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택시 운전사 이모씨(30)는 한달전 택시를 탔던 교포손님의 얼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50대 초반의 그는 당시 심각한 표정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지노에서 마지막 남은 돈을 모두 털린 직후였던 것. 부인이 한국에 가 있던 3주 동안 이민생활 30년만에 이룩한 사업체 3개와 집 등 전재산을 날려버린 그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본전을 찾아야 한다』며 도박빚을 얻기 위해 교포사채업자들을 찾아다녔다. 유학생 P씨. 그는 현지유학생 기피인물 1호다. 그는 카지노에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공부는 아예 뒷전으로 미뤘다. 돈이 다 떨어지자 동료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아챈 부모는 송금을 끊어버렸고 『귀국하지 말라』는 엄명까지 내렸다. 도박으로 망한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누구든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스가 되지 않는다. 일부 교민과 유학생, 그리고 일부 한국 관광객들의 도박바람이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이야기다. 주말이면 가정을 팽개치고 카지노로 향하는 40대주부, 지난 4월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은 뒤 아예 그곳에 살다시피하면서 주유소 3곳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한 40대 남자…. 이들은 수십년간 온갖 고생을 하며 이룩해 놓은 「아메리칸 드림」을 한장의 포커로 날려 버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금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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