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하마 산매미 울때 됐는데…

  • 입력 1997년 6월 9일 08시 07분


새벽공기를 타고 뻐꾸기가 운다. 보리누름에는 더 자지러지게 울어대는가 보다. 자작나무 숲 기슭을 지나자 산정을 향해 오솔길을 걷는다. 밤의 고요가 걷히고 산이 깨어날 시간, 산비둘기가 푸드덕 어둠을 털고 새벽을 가른다. 밤사이 달빛이 걸러낸 숲의 맑은 공기가 마음을 하얗게 씻어주는 것 같다. 인간에게 가장 슬픔을 안겨준다는 이별, 잠시의 헤어짐은 또 만날 수 있겠거니 하는 미련이라도 있지만 이제 영영 뵈올 수 없다는 격함이 한동안 깊은 울음을 울게 한다. 그래서 뒤에 남은 자는 먼저 떠난 자리를 서성거리며 많은 날을 두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 날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아 섬광처럼 인생을 살다 어느 한 때는 돌려주어야 하는 삶, 그냥 받았다가 그냥 돌려주어야 하는 하늘의 법도를 놓지 않으려고 안타까워하며 현재를 아주 내것으로 오래 갖고싶어하는 게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무덤위에 마지막 한 줌의 흙을 다독거리며 떠남을 절감하게 되고 애절한 통곡을 한다. 돌려받을 것을 왜 주었는지, 때로는 하늘을 향해 투정을 부리고 싶어짐은 범인의 마음이 얕아서 만일까. 떠나는 임의 마음이야 보내는 이 마음 같으랴. 하늘 가까운 산마루에서 내려다본 하계(下界), 어느 한 곳 빈 곳 없이 꽉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듯 엎드린 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자락을 타고 산사의 범종이 법열처럼 피어나고 멀리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을 뚫고 대지가 힘겹게 붉은 햇덩이를 밀어올리고 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광활한 우주속으로 달려가는 지구의 공전소리에 귀를 모아보지만 세속에 흐려진 마음의 귀머거리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묵직한 등과 긴 허리를 웅크리고 있는 저 산맥들과, 하늘 끝에서 끝으로 빈 곳을 찾아 달려가는 태초의 저 바람과 소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조상님이 송홧가루 날리는 저 노송아래 잠들어 계시니 나 또한 저곳에 묻혀 영겁을 두고 솔바람 소리를 들으리라. 꽃들이 피는 자리나 나무가 푸르던 자리도 한 겹 상보(床褓)를 벗기면 다 저승의 문인 것을. 언제 봐도 산은 좋다. 하마 산매미 울 때가 됐는데 풋풋한 산초 내음만 싫지 않게 바람 속에 묻어나고 있다. 많은 날은 왜 가는가, 이 하루만 남기고서. 조길수 (경북 경산시 중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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