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李石씨 어머니,시신앞서 끝내 오열

  • 입력 1997년 6월 5일 07시 58분


어머니의 절규
어머니의 절규
『석아, 석아, 이 바보같은 놈아』 아들의 주검을 본 어머니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뜨렸다. 한양대에서 학생들에게 맞아 숨진 李石(이석·23)씨의 어머니 鄭玉愛(정옥애·49)씨. 4일 밤 10시15분 부검을 하기 위해 아들의 시신이 옮겨져 있던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한 정씨는 도착할 때만 해도 굳은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카메라 불빛에도 굳은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던 정씨는 부검실에서 흰종이로 가려져 있던 아들의 얼굴이 밝은 불빛아래 드러나는 순간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져 보았지만 차디찬 아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씨는 『석아, 석아, 바보야』만 연발하고 다른 말은 모두 잊어버린 사람같았다.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을 짚은 채 절룩거리는 아버지 李丙郁(이병욱·52)씨는 부인 뒤에서 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방안을 서성거렸다. 정씨는 진정하라는 부검관계자들의 만류로 부검실을 나서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린 채 아들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검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게 해달라』는 정씨의 애원을 관계자들도 말릴 수는 없었다. 또 다시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린 뒤에야 정씨는 아들을 뒤로 하고 부검실을 나왔다. 이에 앞서 아버지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반경 직장인 전남 해남군 계곡면사무소에서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비보(悲報)를 듣고는 어머니 정씨와 함께 정신없이 상경했다. 이날 오후 8시반경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병원 영안실에 도착했으나 그곳엔 아들의 시신조차 없었다. 경찰관에게서 부검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는 영안실 앞 벤치에 쓰러지고 말았다. 『석이는 성격이 고분고분하고 겁이 많아 싸울 줄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면서도 집에 매일 전화할 정도로 효자인 그 애가 시위를 하다니…』 〈금동근·이철용·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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