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고아남매 어버이날 꽃報恩에 울어버린 「이웃엄마」

  • 입력 1997년 5월 7일 20시 01분


『큰 꽃은 누나 마음, 작은 꽃은 제 마음이에요』 6일 밤11시경 서울 송파구의 13평짜리 한 아파트에서 成元(성원·12·초등학교 6년)이가 柳春子(유춘자·43·여)씨에게 수줍게 내민 소쿠리에는 카네이션 두송이가 안개꽃에 쌓여 있었다. 『꽃밖에 못 샀어요. 내년 어버이날엔 꼭 좋은 선물 해드릴게요』 동생 뒤에서 얼굴만 붉히고 있던 銀淨(은정·16·여고1년)이는 못내 미안한 표정이었다. 잠자리에 들 무렵 『잠깐 집에 와주세요』하는 은정이의 전화를 받고 『밤중에 무슨 일이지』하며 한걸음에 달려왔던 유씨는 한참동안 카네이션 향기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은정이 아버지 성원이 엄마. 하늘나라에서 어린 남매 걱정하며 마음 졸이지 말고 편히 지내세요. 꼬마 울보들이 이젠 저를 울릴 만큼 컸으니까요」. 은정이는 초등학교 4학년때 뇌종양을 앓던 아버지를, 6학년때는 척추암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를 잃었다. 교회활동을 하며 은정이 어머니랑 친하게 지냈던 유씨는 때론 파출부로, 때론 가정교사로 은정이네 집의 빈 자리를 조금씩 채워 나갔다. 그러나 한 아파트단지에 살며 하나하나 챙기는 유씨의 배려가 간섭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걸까. 은정이는 『친척집으로 가겠다』며 성원이를 데리고 안양 큰댁으로 떠나 버렸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을 실감하며 2년여를 보냈다. 95년 12월 어느 날 유씨는 은정이를 찾아 갔다가 말문이 막혀 버렸다. 형형색색 물들인 머리, 초점없는 눈, 말 한마디만 건네도 금방 달려들 것 같은 반항기…. 유씨는 그 자리에서 은정이를 데리고 서울로 왔다. 두 딸(11,15)에게 독방을 줄 수 있는 넓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모아 두었던 돈을 남편(57·회사원)과 의논끝에 13평짜리 은정이네 전세 아파트를 마련하는데 보탰다. 자기 집에서 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된 은정이는 예전의 어여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렸던 공부에 대한 흥미도 되찾은 은정이는 『옆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그 사람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 놓았던 책도 얼른 다시 잡게 된다』고 말했다.자기 가정보다 은정이네 일을 더 열심히 돌보는 유씨에게 「나중에 무슨 덕을 보겠다고 그 야단이냐」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유씨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답한다. 『나중에 자식 덕보기 위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도 있나요』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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