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재수사]『청와대-은감원-재경원 수시 접촉』

  • 입력 1997년 3월 26일 07시 27분


지난해 말경 한보철강이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청와대가 한보부도를 막기 위해 시중은행장들로부터 수시로 대출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으며 실제로 대출을 해주도록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25일 단독입수한 검찰의 한보사건수사기록에 따르면 張明善(장명선)외환은행장과 우찬목 전조흥은행장은 李錫采(이석채)전청와대경제수석과 尹鎭植(윤진식)비서관이 이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장행장은 검찰에 소환된 지난 2월 7일 자술서와 진술조서를 통해 청와대의 대출개입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장행장은 지난해 12월말경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이 1천억원의 대출을 요구했으나 한보가 자금압박을 받고 있고 곧 부도가 난다는 소문이 있어 대출금을 상환받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대출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성진전무를 시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의 윤비서관에게 대출을 거절한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것. 그러자 20분쯤 후 윤비서관이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노동법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한보가 부도가 나면 사회 경제적인 파장이 크다. 구정전까지는 부도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다』며 1천억원을 대출해줄 것을 종용했다고 장행장은 밝혔다. 장행장은 윤비서관의 대출종용을 거절하면서 『외환은행만으로는 안되고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을 중심으로 4개 은행이 공동으로 협의할 것을 건의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제일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와 오전 11시에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회의실에서 4개 은행장이 모여 협의, 1천2백억원의 추가자금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모았으나 은행별로 대출금을 얼마씩 분담할 것인지에는 실패했다는 것. 장행장은 『회의 도중에 제일은행측에서 윤진식비서관 李秀烋(이수휴)은행감독원장 林昌烈(임창렬)재경원차관과 수시로 전화접촉을 하는 것 같았다』며 『오후 4시 2차 회의에서 결국 은행별로 대출분담액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한보측에 긴급구제금융을 해주기로 한 이날 4개은행장회의결과는 바로 며칠 후 다른 사람이 아닌 이전경제수석을 통해 정총회장에게 통보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총회장은 2월 4일자 자술서에서 지난 1월 7일 이전수석이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해 갔더니 『신광식제일은행장을 만나보라』고 했다는 것. 정총회장은 그날 오후 4시경 조선호텔 로비에서 신전행장을 만났더니 『4개 은행(제일 조흥 외환 산업)이 대출해주기로 됐다』고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1월 8일을 전후해 한보철강에는 부도전 마지막 1천2백억원의 대출이 나갔다. 이같은 긴급구제금융에 앞서 우찬목전조흥은행장도 2월9일자 진술조서에서 『지난해 12월3일 한보에 1천억원을 지원해주기 전에 이석채 전청와대경제수석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청와대의 대출종용사실을 검찰조사과정에서 털어놓았다. 우전행장은 그에 앞서 11월말경 정총회장이 1천억원 대출을 요구해오자 추가대출이 어렵다며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정총회장이 자신의 배경을 과시해 이를 확인해 볼 생각으로 (청와대로)이전수석을 만나러 갔다는 것. 우전행장은 12월3일 이전수석에게 『추가지원을 하지 않으면 부도날 상황』이라고 설명했더니 이전수석이 『부도가 나면 되느냐. 파장이 크다』는 반응을 보여 바로 그날 대출을 해줬다고 진술했다. 한편 이전수석은 한보철강이 부도난 직후인 지난 1월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부도 날 위기에 빠졌는데 정부에서 아무런 대책없이 이를 모른체할 수는 없어서 지난해 12월초부터는 청와대에서 직접 상황파악에 나섰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그는 『부도직전에 청와대와 정부가 상황파악을 하고 부도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대출이 나간 것을 대출개입으로 보는 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최영훈·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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