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기자]『망명한 황장엽이가 우리고향 사람이라는데 혹시 알겠소』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이 넘어온 것처럼 반갑구먼』
1.4후퇴때 고향인 함경북도 길주를 등져야 했던 黃虎三(황호삼·71·경기 안양시)씨.
황씨는 지난 밤에 이어 13일 오전에도 계속 전화로 『황장엽이가 혹시 친척 아니냐』고 묻는 고향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자꾸만 가슴이 뛰었다. 전화대화는 자연스럽게 정든 고향얘기로 이어졌고 가물거리던 고향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기 때문.
『온수평(溫水坪)마을의 온천에서 날계란을 익혀먹던 추억이 눈 앞에 선하고 북에 두고 온 부인과 당시 두살이던 아들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린다』고 말하는 황씨의 눈가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황씨는 『실향민들에게는 고향사람만큼 반가운 이가 없다』며 『황장엽은 비록 길주에서 자란 것 같진 않지만 서울에 오면 생생한 고향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황씨처럼 길주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황장엽의 망명소식은 남다른 감회를 안겨줬다.
이북5도청 길주군민회장 馬郁(마욱·70)씨는 『고향친구들과 저녁을 먹다 황장엽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황장엽이 서울에 오면 환영회를 크게 열어야겠다』고 말했다.
마씨는 또 『평소 자식들에게 「내 생전에 고향가긴 글렀다」고 말해왔는데 황장엽같은 거물급이 넘어오는 걸 보면 고향갈 날도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실향민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길주공립농림학교 재학당시 반공(反共)운동을 하다 옥살이까지 했다는 韓起虎(한기호·70·서울 송파구 삼전동)씨는 『고향사람이 넘어온 것은 반갑지만 「북한 공산당은 패하기는 해도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