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반격에 나섰다 “진짜 집안 싸움은 이제 시작”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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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가 ‘꼼수 탈당’ 후 복당한 민형배 의원과 함께 5월 24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나와 당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 의원 페이스북


“(뭐만 잘못하면 당 대표가 책임지고 내려오라고 하는데) 그런다고 안 내려가니까 걱정하지 마라.”

“지금까지는 분열과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자제해왔다. 그래서 ‘사이다가 김빠졌다’, ‘맹물 됐다’ ‘이재명다움이 사라졌다’라는 지적과 충고를 많이 받았다.”

“(이원욱 의원이 ‘개딸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라며) 이래도 ‘정치 팬덤’과 결별을 안 할 것이냐기에 (전송자를) 조사해보니 아니더라. 모르는 사람이다. 당원도 아니다. 그러니까 잘 가려내야 한다.”

“허위 사실에 기초해서 비판하면 되겠냐. 외부 이간질에 놀아나지 말자.”
5월 24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사 내 ‘당원존’에서 진행한 당원과의 온라인 만남 중 쏟아낸 발언들입니다. ‘개딸’(개혁의 딸)의 아버지이자 ‘재명이네 마을’(이재명 온라인 팬카페) 이장님인 이 대표는 지난해 당 대표가 되자마자 당사 내에 당원들을 위한 당원존부터 만들었죠. 최근 개딸들이 비명계 ‘수박’ 의원들에 이어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를 비판한 대학생위원회 등 청년 정치인을 상대로 집단 린치를 벌이는 것에 대해 당 안팎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그 당원존에서 이 대표가 보란 듯이 자신의 강성 지지층을 격려한 겁니다. 최근 이어진 당의 악재 속에 바짝 몸을 낮추던 이 대표가 간만에 발끈하고 나선 거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쇄신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일요일이던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6시간 반가량 의원총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비명계 뿐 아니라 중립 성향 의원들도 이 대표 등을 향해 당의 쇄신을 촉구하며 일부는 ‘재신임’까지 요구했다. 뉴스1
5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박광온 원내대표,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 쪽을 바라보는 모습. 동아일보 DB
민주당 내에선 시점을 잘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앞서 5월 14일 열린 ‘쇄신 의원총회’가 이 대표를 자극한 ‘트리거’였다는 거죠. 일요일이던 이날 오후 4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 비명계 의원들은 작정한 듯 이 대표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박용진 의원이 “당이 다 죽게 생겼으니, 대표가 쇄신의 칼을 들고 휘둘러라”라고 포문을 열었고, 이제껏 의총에서 목소리를 낸 적 없던 초선 의원들도 연이어 자유발언에 나섰다 합니다. 일부 의원들은 이 대표 면전에서 재신임까지 요구했다 하죠.

한 비명계 의원은 “비명뿐 아니라 중도 성향 의원까지 20여 명이 이 대표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는데 정작 친명 의원들이 별로 방어를 안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재명 재신임’ 요구가 이어지자 이 대표 최측근 모임인 ‘7인회’의 김영진 의원이 나서 “이재명만으로도 안 되지만, 이재명 없이도 총선에선 못 이긴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하네요. 한 중도 성향의 의원은 “이 대표가 이날 세게 충격을 받고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 “사이다의 컴백” 진격의 이재명
그동안 ‘불쌍 모드’로 전환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잠자코만 있던 이 대표가 역공에 나선 배경이겠죠. 반격의 서막은 이 대표의 유튜브 라이브에 앞서 5월 24일 오전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 대표가 임명한 친명계 원외 서은숙 최고위원이 이례적으로 홍기원, 이원욱 의원 등 비명계 현역 의원들을 공개 저격한 겁니다.

“최근 의총장에서 한 의원이 ‘지도부가 (김남국 사태에) 손 놓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라고 한 건 허위사실 유포다. (중략) 최근 의원 한 분은 자신이 받은 문자메시지를 소개하며 (보낸 사람을) ‘개딸’ 당원, 즉 이재명 대표 지지자로 단정했다. 하지만 윤리감찰단 조사 결과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당원이 아니었다. 무슨 근거로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을 개딸 당원으로 단정하고 이 대표에게 절연을 요구했는지 소명해야 한다.”

곧이어 친명 박성준 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을 통해 “(감찰 결과) 메시지 발신자가 당원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고 외부 세력의 이간질로 드러났다”라며 “감찰단은 이 의원의 문자 공개 당시 발신자를 강성 당원으로 단정한 정황과 근거도 확인해 향후 유사한 이간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가세했죠.

이날 저녁 진행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이 대표는 서 최고위원을 직접 초대해 ‘대의원제 폐지’를 한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얼마 전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총회를 열었는데 (험지인) 대구·경북 위원장도 대의원제 폐지에 동의했다.”(서은숙)
“저도 같이 만나 뵈었는데, 반대를 많이 할 줄 알았다. 원내, 소위 국회의원들은 가진 게 많다. 원외 위원장으로선 가진 기득권이랄 게 대의원 선발권뿐인데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대의원제 폐지를 얘기해서 정말 놀랐다.”(이재명)

(그 동안 친명 의원들과 강경 권리당원들은 “당 내 선거에서 권리당원과 대의원이 행사하는 표의 가치가 달라 당 내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며 대의원제 폐지 또는 축소를 요구해 왔습니다. 예컨대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의 경우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의 비율로 표가 반영되는데, 1만2854명인 대의원 한 명의 표가 140만 권리당원 60명 표와 맞먹는 만큼 반영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날 라이브 방송엔 ‘꼼수 탈당’의 아이콘 민형배 의원도 출연했습니다. 이 대표는 “누군가 특별희생을 당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정상적 공동체가 된다”며 민 의원의 탈당을 ‘특별희생’이라고 추켜세우더군요. 민 의원은 방송 후 페이스북에 “‘사이다 이재명’의 컴백 선언”이라고 화답했습니다.

“‘툭 하면 당 대표에서 내려오라는 이들이 있다’라는 말에 그런다고 안 내려가니 걱정 마시랍니다. 당연히 그러리라 믿었습니다. 네, 그게 바로 이재명이니까요.” (민형배 페이스북)


● ‘대의원제 폐지’ 두고 본격 갈등
다음날인 5월 25일 이 대표를 한 번 더 ‘각성’시킨 의총이 열렸습니다. 친문 홍영표 의원은 의총에서 “당이 강성 팬덤과의 결별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의원 28명의 이름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는 “극단적 지지자나 당원 일부가 언어폭력과 집단 공격 등으로 당의 단합을 해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 왔지만 실질적 조치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홍 의원이 의총장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오랜만이라 동료 의원들도 놀랐다 하네요.
5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앉아있는 이재명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 이날도 비명계는 이 대표에게 개딸과의 결별을 촉구했다. 정 최고위원 등은 이에 맞서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했다. 동아일보 DB
이날 의총장에선 대의원제 폐지를 둘러싼 갈등도 본격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친명 정청래 최고위원과 김용민 의원 등이 대의원제 폐지 및 축소를 요구하자 비명 김종민 의원과 중진 김영주 의원 등이 “전당대회도 아니고 총선을 앞두고 왜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하나”라고 맞선 거죠.

이에 아랑곳 않고 친명 장경태 최고위원은 바로 다음날 지도부에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을 현재의 60대 1에서 20대 1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과 권리당원과 대의원을 각각 1인 1표제로 바꾸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6월 1일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국회 내 민주당 전체 의원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대의원제 폐지에 찬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죠. 친명 지도부와 지지층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행동에 나선 모습입니다.

최근 이런 ‘친명의 진격’엔 “더 이상 국회로 넘어올 추가 체포동의안이 없을 것”이란 자신감도 반영된 듯 합니다. 그 동안은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비해 비명과 중도 의원들을 향해 유화책을 펼쳐왔는데 이제 더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최근 만난 친명 핵심 의원은 “검찰이 백현동 사건을 그렇게 털었는데도 아무것도 안 나온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비명계 의원 A는 “이 대표가 최근 의총에서 이어진 ‘내부 반란’에 놀라 개딸과의 결별은커녕 오히려 동맹 강화에 나선 것”이라며 “‘비명계 소탕’으로 자신에게 등 돌리는 중도 성향 의원들에게 ‘아직 내가 당 대표다’, ‘공천권은 나에게 있다’라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비명계인 B 의원은 “현 상황이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라는 대자보를 통해 홍위병을 동원해 정적(政敵)을 제거했던 것을 연상시킨다”라고 했습니다.

비명계는 마지막 보루가 ‘의총’이라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 중 여럿은 이미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친명 일색 최고위원회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의총을 상시화해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 주요 현안에 대해 의총이 열리기만 한다면 충분히 싸워볼만하다는 겁니다.

A 의원은 “이제 진짜 집안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의 내홍은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거죠. 민주당 내 권력다툼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찔합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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