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이재명의 ‘데칼코마니’ 같은 시간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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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두 번째 검찰 출석 길에도 강성 지지층 ‘개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도 이들은 손에 ‘우리가 이재명이다’ ‘이재명 힘내라’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파란색 풍선을 든 채 ‘이재명 지킴이’를 자처했습니다. “이 대표에게 혼날 각오 하고 나왔다”는 박찬대 최고위원 등을 비롯해 2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도 이 대표를 배웅 나왔습니다.

지난 10일 첫 소환 때 현역 의원 40여 명과 동행했다가 ‘방탄 병풍’이냐는 비판을 받았던 이 대표는 “이번엔 혼자 가겠다”고 거듭 당부했지만, 당내 ‘찐명’들이 그를 홀로 보낼 리 없죠. 여기에 보수 성향 단체와 극우 유튜버들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맞불 집회’에 나서면서 토요일 오후 내내 서초동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가운데 청사 밖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과 보수 단체가 서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가운데 청사 밖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과 보수 단체가 서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런데 이 그림, 어딘가 낯익지 않나요. 2019년 가을, ‘조국 사태’ 속 나라가 둘로 쪼개져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를 외치던 때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 당시 주말이면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 여의도 일대에선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또는 ‘조국수호, 검찰개혁’을 각각 외치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었죠. 현역 정치인들마저 국회 대신 광장으로 뛰쳐나가 진영 간 대결에 불을 붙이던 흡사 전쟁통 같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불과 3년여 만에 또다시 벌어진 것입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을 지키자는 개딸들 시위 사진을 보니 딱 예전 조국 사태 때 같더라”며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두고 민주당 내부적으로 치고받는 것도그때랑 똑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국과 이재명, 온통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두 ‘문제적 인물’을 비교해봤습니다.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더군요. 조국이 걸어온 시간을 이재명이 ‘데칼코마니’ 마냥 걷고 있었습니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 지방재정 개혁안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오른쪽)과 그를 응원차 찾아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    성남시 블로그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 지방재정 개혁안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오른쪽)과 그를 응원차 찾아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 성남시 블로그
① 조국 블랙홀 vs 이재명 방탄에 멈춰 선 국정
2019년 여름 터진 조국 사태 여파로 대한민국 정치권은 이듬해 총선까지 내내 ‘조국 블랙홀’에 갇혔습니다.

그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그해 10월 14일 사임하기까지 67일 동안 일가의 사모펀드 논란부터 웅동학원 비리 이슈, 자녀 표창장 위조 및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 저자 등재 논란 등 각종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터져 나오면서죠. 초유의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까지 거치느라 20대 국회는 마지막 국정감사마저 ‘기승전 조국’으로 파행만 거듭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수출 보복 대응이나 부동산값 폭등, 선거제 개편 등 주요 현안은 모두 묻혀버렸습니다.

지금 국회 상황도 똑같죠.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 속에 어렵사리 문을 연 1월 임시국회는 이제까지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한 채 ‘개점휴업’ 중입니다. 민주당이 임시회 소집 명분으로 내세웠던 안전운임제 같은 주요 일몰 법안들은 전혀 진척이 없죠. 다음 달 2일 2월 임시국회가 시작하지만, 여야는 이번에도 기승전 ‘이재명 방탄’으로 싸움만 벌이다 끝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② 총선 공천 앞두고 민주당도 ‘반쪽’
조국과 이재명은 21대와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이 속한 민주당도 두 쪽 냈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2019년 민주당에선 공천을 둘러싼 치열한 ‘조국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조국백서’ 필진으로 참여하는 등 당시 대표적인 ‘친조국’ 인사로 꼽히던 김남국 의원(그 당시엔 변호사였습니다)이 서울 강서갑으로 공천을 신청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죠.
강서갑은 인사청문회 당시 조 전 장관 면전에 대고 “언행불일치”라고 강하게 비판해 당내 ‘반조국’ 대표 주자로 꼽히던 금태섭 당시 의원의 지역구였습니다. 김 의원의 도전장에 ‘금태섭 제거용이냐’는 논란이 커졌고, 당 지도부는 뒤늦게 김 의원을 강서갑이 아닌 경기 안산 단원을로 전략공천했습니다만, 이 사태는 결국 금 전 의원의 공천 탈락과 탈당으로 이어졌습니다.

당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당시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 어디서 만나든 조 전 장관을 감싸고 옹호하기 바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 중진 의원은 식사 자리에서 “검찰이 그렇게 털었는데도 딸이랑 부인만 좀 나오고, 조국 본인은 아무것도 안 나왔다. 이쯤 되면 성인(聖人) 수준 아니냐”고 성토를 했었죠.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한 중진 의원은 “내가 조국과 개인적으로 친하다. 솔직히 금수저가 그렇게 살아오기 쉽지 않다. 고작 표창장 갖고 이럴 일이냐”고 되려 역정을 냈던 기억도 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으로 갈라진 지금의 민주당과 비슷하죠? 국회의원에겐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이 대표를 중심으로 친명계는 똘똘 뭉친 상태입니다. 이들은 “이재명 없이 총선 치를 수 있겠냐”고 연일 겁박하고 있지만, 비명계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명계 의원 모임인 ‘민주당의 길’은 31일 첫 토론회를 열고 당 지지율 문제를 논의합니다. 모임을 주도하는 이원욱 의원은 통화에서 “여론조사업체에 첫 발제를 맡겼다. 숫자와 팩트에 기반해 ‘민심으로 보는 민주당의 길’에 대한 토론을 할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이렇게 못하는데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우리 당의 지지율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당연히 내년 총선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이 대표가 기소될 경우에 대비한 당내 눈치싸움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친명계는 “체포동의안은 당연히 부결시켜야 한다”(김남국 의원), “수사의 이상한 점들만 봐도 (체포동의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박주민 의원)라며 연일 체포동의안 부결에 벌써 힘을 싣고 있습니다. 반면 비명계는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를 꺼내 들며 “이 대표도 기소되면 당 대표에서 일단 물러나야 한다”(이상민 의원)라고 서서히 압박하고 있고요.
③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vs 이이제이(以李制李·이재명으로 이재명을 제압한다)
조국과 이재명은 각자 과거의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둘 다 유명한 ‘SNS 중독자’죠.

조 전 장관의 무궁무진한 SNS상의 발언들은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스트라다무스(조국+노스트라다무스)’ 등 온갖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과거 SNS 글만 모아둔 계정까지 새로 만들어질 정도였죠.

2019년 딸 조민 씨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등재 논란이 터졌을 때 “(나는) 문과를 전공해서 이과에선 제1 저자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라던 그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엔 “이공계 논문의 경우 제1 저자 외에 제2, 3 저자는 조언, 조력을 준 사람을 다 올리는 것이 규칙”이라며 꽤나 구체적으로 언급했던 것에 발목이 잡혔죠. 2017년 “도대체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라고 비판한 글은 2년여 뒤 현직 법무부 장관으로 초유의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자신에 대한 셀프 저격글로 돌아왔고요.

이 대표도 ‘과거의 이재명’과 연일 혈투 중입니다. 오죽하면 국민의힘에선 ‘이재명으로 이재명을 제압한다’는 의미의 ‘이이제이(以李制李)’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이 대표가 2014년 경기 성남시장 시절 자신의 트위터에 적었던 ‘공금횡령, 성범죄 한 번만 저질러도 퇴출’이라는 사뭇 강경한 구호는 배우자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카 바꿔치기’ 논란 당시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요즘 입만 열면 ‘정치보복’을 외치는 이 대표는 2017년에만 해도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만날 해도 된다”고도 했죠. 2016년 트위터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과 동일하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강제수사해야 한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2016년 이재명’의 법치를 ‘2022년 이재명’은 따르라”고 촉구하기도 했네요.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올린 페이스북 글.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올린 페이스북 글.
사실 조국의 ‘가족 리스크’나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이슈들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앞장서서 이들을 과도하게 비호한 탓에 총선을 앞두고 상대 당과의 진영 대결, 그리고 당 내부의 분열로 확전돼버렸습니다.

민주당이 깊고도 험난했던 ‘조국의 강’을 완전히 건너기까진 무려 32개월이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민주당은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대선, 2022년 지방선거로 이어진 ‘전국 선거 3연패’라는 암울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2021년 9월 대장동 의혹으로 시작된 이재명 사법리스크도 어느덧 17개월째 ‘온고잉’입니다. 아무리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지만,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요. 이 추운 날씨에 도로에서 시위하시는 분들, 그리고 오늘도 국회에서 싸우시는 분들 우리 모두 조국 사태 이후 느꼈던 그 허무함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ps. 지난번 1차 소환 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115/117446669/1) 에 이어 2차 소환에도 이 대표를 배웅, 마중 나간 의원님들 명단입니다. 이 대표 출석 전인 오전 10시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서문 앞에는 정청래·박찬대·장경태 최고위원과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 박성준 임오경 대변인 등을 비롯해 김남국·문정복·양이원영·전용기·황운하 의원 등 ‘강경파’ 위주로 현역 의원 20명가량이 대기했습니다. 원조 친명계인 7인회 소속이지만 2021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규민 전 의원도 현장에 나왔더군요. 이 대표는 이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습니다.

이로부터 12시간 뒤 이 대표가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엔 오전엔 없던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조정식 사무총장, 김성환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도 총출동했죠. 이밖에 이해식, 주철현, 김병기, 이수진, 김민석, 김승원, 김병욱, 김병주, 권인숙, 유정주, 김용민 의원 등 30명의 현역 의원들이 이 대표를 마중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에 앞서 박찬대 정청래 장경태 김남국 등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의원 및 당직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3.1.28/뉴스1 ⓒ News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에 앞서 박찬대 정청래 장경태 김남국 등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의원 및 당직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3.1.28/뉴스1 ⓒ News1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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