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발언 비판한 이란… 주목적은 ‘동결 자금 70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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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월 25일 1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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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17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17 뉴스1
이란 정부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건 무엇보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극심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와 정권의 부정부패, 경제정책 실패 등의 영향으로 자국 내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이란 당국이 그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데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단 지적이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 논란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보였다”면서도 “우리 관점에선 한국 정부의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칸아니 대변인은 이어 “이란 국민들은 한국에 있는 그들의 돈이 반환되는 걸 볼 권리가 있다”며 “이 문제를 다른 외교 현안과 연계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UAE 방문 당시 우리 군 UAE 군사훈련 협력단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형제 국가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다.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말해 이란 측의 반발을 샀다.

우리 정부는 즉각 외교경로를 통해 “윤 대통령 발언은 장병 격려 차원이었고 한·이란관계와는 무관하다”고 이란 측에 설명했지만, 이란 측은 18일 윤강현 주이란대사를 초치했고, 우리 정부도 19일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하는 등 양국 갈등이 커질 조짐을 보였다.

외교가에선 일단 “한국 정부가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칸아니 대변인 발언을 근거로 윤 대통령 발언 자체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이란 측이 윤 대통령 발언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동결 자금’ 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있단 점에서 관련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단 지적도 제기된다.

레자 나자피 이란 외교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앞서 우리 측 윤 대사를 초치했을 당시 동결 자금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유효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위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엔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약 70억달러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지난 2018년 5월 이란의 비밀 핵개발 의혹을 이유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한 뒤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데 따른 것이다.

미 정부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15년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함께 맺은 ‘이란핵합의’는 이란의 핵개발 중단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서방국가들의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게 핵심이다.

이런 가운데 이란 측은 그동안 우리 정부를 상대로 동결 자금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상황.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2021년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우리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를 95일간이나 억류했을 때도 이란 측이 주장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동결 자금 문제가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는 게 국내외의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란핵합의 복원과 미국의 대이란 제재 해제가 선행해야만 동결 자금 반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정부는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의에 나섰지만, 아직 이란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사이 이란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제재로 경제사정이 악화된 데다 최근엔 ‘히잡 반대’ 등 반정부 시위와 노동자 파업이 이어지면서 정치적 불안이 심화돼왔다. 그 여파로 이란의 통화(리알화) 가치도 이달 22일(현지시간) 기준으로 미화 1달러당 45만리알을 웃돌 정도로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작년에만 50%에 이르렀다.

이 같은 내부 사정 때문에 이란 측이 더욱 더 동결 자금 문제 해결에 목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핵합의가 깨진 뒤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70억달러는 큰 의미가 있는 금액”이라며 “거기에 더해 이번 상황(윤 대통령 발언 논란)이 터지니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병옥 한국외대 이란어과 명예교수도 이란 당국의 최근 움직임은 “민주화 시위에 집중된 국내 시선을 국외로 돌리면서 우리나라에 묶여 있는 70억달러도 빨리 찾아 안 좋은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보태려는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은행에 동결돼 있는 70억달러는 미국의 제재에 따라 각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자금 가운데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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