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前국정원장 “인수위원들, 입은 봉하고 눈-귀만 열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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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 새 대통령에 바란다]
“인수위원들, 입은 봉하고 눈-귀만 열어야”
‘DJP 정부’ 때 인수위원장 맡아… “前정부 공격보다 새 정책 설득을”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옛 우당기념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던 이 전 원장은 아들의 오랜 친구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초심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옛 우당기념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던 이 전 원장은 아들의 오랜 친구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초심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선거 때야 탈(脫)원전, 부동산 등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공격할 수 있지만 이제는 안 된다. 이제는 (새 정부) 정책에 대해 납득을 시켜야 한다.”

1998년 이른바 ‘DJP 정부’로 불린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사진)은 출범이 임박한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원들이 향후 인수위 활동에서 정책 실패의 책임 소재를 따져 묻기보다는 새 정부 국정 과제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

이 전 원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옛 우당기념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관료들에게) ‘정책의 흠결을 보완하자’며 잘못을 알고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지 억압적으로 굴면 실패한다”며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인수위원들은 입은 봉하고 눈과 귀만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172석의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있고, 근소한 차이로 이겼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겸손해야 한다”며 “민주당에도 양심적인, 존경할 만한 의원들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협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장관 너무 많다… 대통령과 마이크 없이 원탁토론 할수있어야”

이종찬 前 국가정보원장


“인수위원장에 안철수 선임 잘한일”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 조성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선거운동 과정의 논공행상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인수위가) 산으로 간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선거운동과 인수위 구성 및 운영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인수위는 향후 내각 구성까지 염두에 둔 인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도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마이크 없이 토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19명으로 늘어난 장관급 인사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옛 우당기념관에서 약 90분간 진행됐다. 이 전 원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인수위원은 내각 인선을 염두에 둬야”
―인수위 구성에 대해 조언한다면….

“인수위를 두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역대 미국 정권을 보면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 때와 오바마 정부 때 인수위가 성공적이었다. 당시 부시 정부 인수위는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등의 진용을 짜서 인수위를 구성했다. 인수위 멤버들이 내각으로 옮겨가니 연속성이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도 그래야 하나.

“내각을 염두에 두고 꾸리는 게 좋다. 선거 때 공약을 많이 했는데, 그걸 정책으로 실천하는 과제를 인수위가 맡는다. 그 우선순위들을 인수위가 추려 행정부로 이어져야 한다.”

―관료들도 인수위의 구성원이 되는데….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윤 당선인이 폐기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산업부 관료들에게 ‘탈원전을 왜 했냐’고 윽박지르면 안 된다. 점령군의 자세가 되면 안 된다. 그 입법 과정을 차근차근 듣고, 보완하고 고칠 점을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 물론 나도 이걸 당시 인수위원들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줬지만 잘 안 지켜지더라.”

이 전 원장이 인수위를 맡았던 김대중 정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손잡은 ‘DJP 공동정부’였다.

―이번에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손잡은 공동정부인 셈인데….

“당시 인수위원은 (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JP의) 자유민주연합을 각각 12명씩 배분했다. 정책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할 것이기 때문에 ‘50 대 50’은 의미가 없다. 여기에 공동정부의 한 축인 안 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으니 나보다 입장이 나을 것이다.”

―안 위원장 인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잘한 일이다. 약속을 지켰다. 공동정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단일화 협상 당시) 윤 당선인이 안철수 위원장에게 ‘종이 말고 나를 믿어라’라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킨 것이다. 신뢰성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 “국무위원 숫자 줄여야”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우선 너무 장관 수가 많다. 국무회의에서 마이크를 안 쓰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원탁에 앉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국무회의의 문제가 무엇인가.

“장관 임명장을 보면 ‘임(任) 국무위원, 명(命) 기획재정부 장관’이라고 되어 있다. 국무위원이 먼저라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국무회의는 부처 보고 회의다. 전혀 토론이 되지 않는다. 개별 장관이 다른 부처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 개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캐비닛(cabinet·내각)’이라는 자리는 내 부처 이야기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의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토론도 없이 ‘예스(yes)맨’들만 모인 게 무슨 국무회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무슨 책임총리제다 뭐다 해서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 하지 말고 국무회의 하나만 제대로 운영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도 토론을 선호할 것이라 보나.

“(윤 당선인을) 평소에 보면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너무 격식에 맞춰 국무회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장관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의견들을 내 주시라’고 할 것이다.”
○ “겸손하지 않으면 尹 정부 실패할 것
14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윤 당선인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겸손한 정부운영을 당부했다.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윤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청와대를 옮기는 문제는 김대중 정부 인수위에서도 검토했다. 지금 청와대는 일상적인 삶과 동떨어진 왕궁이다. 구조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들고 있다. 대통령이 재킷 벗고 셔츠 바람으로 (비서진의) 각 방을 돌아다니면서 ‘그거 어떻게 돼가나’라고 물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왜 성사되지 못했나.

“당시 우리도 검토했지만, 안보 문제 때문이었다. 유사시 지하벙커 등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청와대를) 못 옮겼다. 하지만 그 뒤로 상당히 시간이 지났으니 (윤 당선인 측도) 보완을 했을 것이다. 해결이 됐으니 ‘광화문 시대’를 이야기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 당선인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겸손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겸손해야 한다. 왜냐하면 172석의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있고, 근소한 표 차이로 이겼기 때문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실패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초심으로 계속 가면 좋겠다. 그러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이 전 원장은 “(윤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써 왔다”며 준비해 온 수첩을 펼쳤다. “과거 미국 클린턴 정부 인수위에 참여해 실패를 겪었던 인사가 정리한 내용”이라며 세 가지를 하나하나 읽었다.

“첫째, 겸손하게 행정부의 의견을 경청하라. 둘째, 큰 정책을 내세워 으스대지 말고 실무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다져라. 셋째, 로비스트, 이권 단체들이 인수위에 끼어들 여지를 두지 마라.”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약력
△중국 상하이 출생·86세 △경기고, 육군사관학교 △제11·12·13·14대 국회의원 △민정당 사무총장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 이사장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이종찬#전 국가정보원장#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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