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은 남포연락소 6인조 잠수정 소행”[주성하의 北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4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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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 부분이 인양되는 모습. 3월 26일에 침몰된 뒤 약 한 달 만에 물속에서 나왔다. 동아일보 DB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 부분이 인양되는 모습. 3월 26일에 침몰된 뒤 약 한 달 만에 물속에서 나왔다. 동아일보 DB
얼마 전 영국 BBC방송이 북한 정찰총국 대좌 출신이라는 탈북자 김국성(가명) 씨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김 씨는 한국 사회에 논란이 될만한 몇몇 주장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초반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들이 청와대에서 5~6년간 근무하고 무사히 북한으로 복귀했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과거 근무한 사람의 명단이 다 있는데, 이중에 북으로 갔다는 행방불명자를 찾지 못하겠습니까. 이건 한국 사회를 너무 우습게 본 주장이죠.

그는 또 “극비리에 황장엽을 암살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졌고 내가 직접 지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황장엽 전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정찰총국이 파견한 공작원 두 명은 입국하자마자 체포돼 10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형기를 마치고 한국 사회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김 씨가 지휘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요.

BBC는 김 씨에 대해 “30년 동안 북한의 첩보기관에서 ‘지도자의 눈과 귀, 두뇌’ 역할을 하면서 최고위층에 올랐으며 2014년 탈북해 현재 서울에 살면서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그가 증언한 내용을 전부 검증하진 못했지만 신원에 대해선 확인했으며 일부 주장에 대해선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김 씨의 신원에 대해 BBC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 씨가 30년 동안 첩보기관에서 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중국에서 정찰총국 산하 외화벌이업체 책임자로 있다가 탈북했습니다. 북한은 총정치국이나 정찰총국 산하 외화벌이 책임자의 경우 대좌나 상좌 편제로 인정해 줍니다. 김 씨가 정찰총국 대좌였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정찰총국 산하 외화벌이 회사에 있기 전에는 다른 기관 2곳을 거치며 민간인으로 평생 외화벌이 업무만 했습니다. 정찰총국 소속 외화벌이 책임자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5년 정도 지냈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30년 동안 대남 공작부서에서 잔뼈가 굵고 많은 비밀을 아는 대좌급 실무 고위간부를 정찰총국이 갑자기 달러를 벌어오라고 중국에 보낼 수 있을까요. 그가 한국 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고위직 탈북자들이 들어가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1년 정도 있다가 조기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에 대해선 그가 어떤 경력을 갖고 있고, 중국에선 뭘 팔았는지 등도 들었지만 그것까진 밝히지 않겠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이 아무리 세계적인 언론사라고 해도, 북한 관련 정보는 한국 언론이 더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CNN 방송도 지난해 4월 김정은 사망설 때문에 망신을 당했습니다.

김 씨의 주장 중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의해 실행된 군사 작전이자 성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북에선 도로 하나 건설하려 해도 최고지도자의 승인이 없으면 안 된다.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실행 불가능한 작전”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김정은의 지시 없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실행했다면 그는 북한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관련 내용을 잘 아는 탈북민도 한국에 은둔해 있습니다. 세계적 명성의 BBC방송조차 “이 사람의 신분은 확인했는데, 주장은 확인할 수 없다”고 보도를 냈는데 저 역시 똑같은 논리로 천안함 폭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한국에서 최초로 서술해 볼까 합니다. 검증이 불가능한 내용이지만, 증언을 한 A 씨는 BBC와 인터뷰한 김 씨보다 훨씬 더 천안함 폭침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A 씨는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고,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신분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밝힐 순 없지만, 그의 신분은 충분히 검증했습니다.

그가 설명한 천안함 폭침 사건의 전개과정은 이렇습니다.

천안함은 정찰총국 산하 서해 남포연락소 소형 잠수정이 격침시켰습니다. 남포연락소는 2009년 이전까지 노동당 작전부 산하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북한은 육상 연락소 2곳과 해상 연락소 4곳을 운영했고 이들은 대남 침투 및 복귀 안내, 전투정찰 임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기간인 2009년 작전부가 정찰총국에 통합돼 정찰총국 1국(육·해상정찰국)이 되면서 남포연락소도 정찰총국 소속이 됐습니다. 해상 침투가 목적인 남포연락소는 소형 잠수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직접 천안함 공격 임무를 지휘했습니다. 천안함은 잠수함 탐지와 방어에 약하다는 점 때문에 공격대상이 됐다고 합니다.

2009년 12월부터 북한은 천안함의 좌표와 움직임 등을 계속 파악해 왔고, 날씨가 좋지 않은 시기를 노려 새벽에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천안함 공격조에는 6인 탑승 소형 잠수정 3척이 망라됐습니다. 6인승은 매우 작기 때문에 잠수함이라고 부르지 않고 잠수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1조 개척조, 2조 공격조, 3조 엄호조로 구성됐습니다. 1조는 겨울에 항이 얼어붙는 남포에서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 얼음을 깨는 등 앞장서 안전한 루트로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2조는 천안함 공격조였고, 3조는 2조의 습격 후 있을 수 있는 반격에 대처해 엄호 및 유인 임무를 수행하되, 2조의 공격이 실패하면 재공격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천안함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한 어뢰에 페인트를 3번이나 덧칠했다고 합니다. 어뢰 파편이 발각돼도 페인트가 3번이나 덧칠된 것을 지목하며, 조작된 어뢰라고 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실제론 세 번 덧칠했다는 어뢰 파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1번이라고 적혀 있는 어뢰 추진체가 발견됐습니다. 이 1번이 북한이 어뢰 내부까지 분해하지 않아 생긴 실수였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쓴 것인지는 세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몇 달 동안의 준비 끝에 3월 26일 마침내 빈틈을 노려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 성공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작전 과정에 앞장서 루트를 개척하던 1조 잠수정이 고장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2조의 침투와 공격, 귀환은 무사히 이뤄졌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당 창건 76년 기념강연회를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당 창건 76년 기념강연회를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천안함 도발 이후 김정은이 이설주와 함께 남포연락소에 직접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천안함 공격조의 성과를 극찬하면서 자기 이름이 적힌 소위 ‘명함 금시계’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공격조 대원들을 당에서 직접 키워야 한다며 2조 잠수정 조원들을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었고, 전원 평양에 3칸 이상 집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천안함을 공격한 2조 6인은 국방위원회 간부, 김일성고급당학교, 김일성종합대학, 인민경제대학 학생 등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천안함이 피격된 지 10년이 넘었으니 이들은 이미 북한의 핵심 간부로 자리 잡고 있겠죠.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그랬듯 한국에 회담하려 내려와도 우리는 그들의 신분을 모르고 환영했을지도 모릅니다.

2조는 많은 특혜를 받았지만, 1조와 3조는 아무런 ‘배려나 특혜’가 없어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 또 어떻게 달래주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A 씨가 밝힌 천안함 공격 전말입니다. 한국에선 천안함 폭침이 김정은의 지시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저지른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시 하달 구조상 이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A 씨가 구체적으로 밝힌 새로운 증언은 남포연락소가 천안함 공격 임무를 수행했고, 소형 잠수정 3척을 작전에 투입해 오래 전부터 천안함을 노렸으며, 공격에 성공한 잠수정 조원들이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 등입니다.

북한을 상대로 우리가 A 씨의 주장을 검증하긴 불가능할 겁니다. 다만 A 씨의 신원은 확실합니다. 현재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약 3만4000명 중 북에서 살 때 천안함 폭침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 A 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원도, 주장도 정확치 않음에도 BBC가 용감하게 기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적어도 신분은 확실한 A 씨의 천안함 관련 증언은 얼마든지 보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번 ‘북카페’의 주제로 정했습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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