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영변 핵능력 건재 과시… ‘對美 핵협상 카드’ 재활용 나선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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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영변 핵시설 재가동


북한이 2년 반 만에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미국에 핵무기 생산 능력과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최근 5개월간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이 지속적으로 가동된 점에 주목했다. 5개월은 북한이 과거 5MW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전체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걸린다고 밝힌 시간이다. 북한이 올해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상황을 감시해온 IAEA가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을 “새로운 징후(new indications)”라며 “심각한 문제”로 명시한 것은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 IAEA, 플루토늄 추출시설 ‘5개월’ 가동 주목

평안북도 영변의 5MW 원자로는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북한의 핵심 핵시설이다.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은 영변 핵시설 가운데 핵무기에 탑재하는 플루토늄 생산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거나 이를 외부에 과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2007년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라 5MW 원자로 불능화를 약속하고 2008년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바 있다. 이후 핵시설 신고와 검증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하다가 ‘불능화 중단’을 선언한 뒤 2018년까지 가동과 중단을 반복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12월부터 가동을 중단하다가 올해 7월 초 돌연 가동을 재개한 징후를 IAEA가 포착한 것이다.

IAEA 보고서는 특히 방사화학실험실이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약 5개월간 가동된 사실을 파악했다. 보고서는 “북한은 1992년 IAEA에 5MW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데 5개월이 걸린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2003, 2005, 2009년에 각각 약 5개월 동안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를 실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 기간 동안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2016년 4월에도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이 포착된 뒤 5개월 만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 보고서는 평양 인근의 강선과 실험용 경수로 내부에서도 건설 작업 등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 北, 美에 ‘영변 카드’ 다시 내미나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한 것은 북-미 대화 재개를 요구해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6월 방한한 성 김 대북특별대표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 하지만 북한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지난달 초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이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을 재개한 2월 중순은 바이든 행정부가 뉴욕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조건 없이 마주 앉자”는 의사를 전달한 때다. 북한은 이때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대화 제의에 응하는 대신에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핵능력은 더 발전한다. 빨리 협상을 재개할 조건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영변’을 다시 북핵 협상 카드로 내미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직접 나서 “미국이 제재를 일부 해제하면 영변지구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영구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정부의 북핵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9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과 대응 방침을 논의한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iaea#북한#영변 핵시설#원자로 재가동#핵무기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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