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는다” “괜찮다” 심상치 않은 북한 식량사정[주성하의 北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8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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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로 지칭하는 1990년대 중반을 나는 평양에서 보냈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94년 12월 말, 설날을 며칠 앞둔 때였다.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원산에 갔는데, 원산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행색이 남루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북 구성에서 온 여인이었다. 그는 군수공장이 많은 자기 지역에선 8월경부터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고 있으며, 자신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친척을 찾아 원산에 왔다고 했다. 구성에선 곡식이 자라기 전에 사람들이 훔쳐 먹어 올해 농사는 기대할 것도 없고, 산에는 소나무들이 줄기가 하얗게 변했다고 전해주었다. 우려먹으려고 모두가 산에 올라 껍질(송기)을 벗겨 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굶어죽을 수가 있지?”

충격이었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배급 상황이 좋지는 않아도 평양과 원산에선 굶어죽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1995년 2월, 을씨년스럽던 평양의 장마당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쌀값이 자고 나면 무섭게 올랐다. 한 달도 안돼 2배가 오르더니, 두세 달 뒤엔 3배가 올랐다. 쌀값이 오르는 것과 비례해 장마당에 웃음이 사라졌고 악다구니만 높아졌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힘을 잃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겨난 꽃제비는 10년 넘게 북한 장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당시 직접 체험한 경험으로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북한처럼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불과 몇 백리 밖에서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사 사태가 오기 전 식량가격은 당연히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 가격 상승 그래픽은 우상향 직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더는 못 버틸 때 갑자기 계단처럼 껑충껑충 뛰어 오른다.

2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요즘 북한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나름 북한과 오랫동안 전화 연락을 한다는 탈북민들의 말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장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아직은 괜찮다는 것이다. 쌀 가격은 1㎏에 북한돈 5000원 전후로 고정됐고 굶어죽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는 것이다. 또 6월이면 보리나 햇감자가 수확돼 식량가격이 안정되는 시기라고 한다.

두 번째 주장은 지금 지방은 물론 평양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쌀값은 최근 한 달 동안 3배나 상승해 1만5000원이 됐다고 한다. 6월에 보리나 햇감자가 나오긴 하지만, 북한에서 보리와 햇감자는 거의 심지 않는 작물이기 때문에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엔 미미한 생산량이라는 분석도 곁들인다.

나와 연계되는 몇몇 대북 소식통은 아직은 식량 사정이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잘 사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이동이 통제돼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니 타 지역에 가서 직접 상황을 보고 오기도 여의치 않다. 현지 사정을 전화로 물으면 도청돼 간첩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괜찮다는 주장과 위기라는 주장 중 어느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지금 당장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정보가 엇갈려도 너무 엇갈린다는 점이 바로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북한 시장에서의 쌀 가격과 옥수수 가격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없었다. 대북 소식통들을 통해 한국에 공개된 가격이 거의 정확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기자가 된 이래 19년 동안 그래왔다. 그런데 불과 한달 사이에 극과 극인 정보가 북한에서 흘러온다. 이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참사를 알리는 서막일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1990년대 중반의 기억을 소환할 수밖에 됐다.

불과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평양에 사는 나는 전혀 몰랐다. 평양까지 충격이 온 것은 특정 지역의 대량 아사가 시작된 뒤 6개월 쯤 뒤였다.

지금 북한은 그때보다 훨씬 더 정보가 잘 통제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지역간 이동이 사실상 거의 차단된 상태다. 눈으로 참상을 목격하고 다른 지역에 와 알릴 메신저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는 없던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됐다. 하지만 굶어죽는 계층은 휴대전화를 가질 능력이 없다. 1990년대 중반에도 전화기가 있었지만, 아사 사태에 앞서 전기가 먼저 끊겨 무용지물이었다. 지금은 태양광 충전기가 많이 보급됐지만 이것도 잘 사는 지역에만 집중됐을 뿐, 굶어죽는 지역에는 휴대전화를 충전할 전기조차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 내에서 외부와 연계되는 정보망이 지금은 대거 사라졌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부터 외부와 연계되는 전화를 뿌리 뽑으라며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지시했다. 벌써 반 년 넘게 국경 지역에는 외부와 연결된 전화기를 찾으려는 검열단이 혈안이 돼 돌아치고 있다. 지금처럼 북한과 통화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 게다가 도청도 일반화돼 있어 국경 지역 사람이 다른 지역의 상황을 자세히 물으면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니 평북 구성에서 다시금 대량 아사가 벌어져도 양강도나 함경북도 국경지역에 사는 사람이 그 소식을 알고, 그 소식이 다시 한국과 연계된 휴대전화로 흘러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북한 외교관이나 무역일꾼들도 자기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북한에서 전화를 거의 연결해주지도 않을뿐더러, 혹시 연결됐어도 가족의 안부 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 간첩으로 의심받아 말을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와도 외부에서 바로 알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북한 식량 상황이 심상치 않을 수 있다고 보는 다른 이유는 쌀 가격에 대해 5000원이라고 하는 사람과 1만5000원이라고 하는 사람 중 한쪽의 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둘 다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코로나를 핑계로 지역간 이동을 차단하면 물류도 차단된다.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물류가 정상적일 때는 지역간 쌀값 편차가 크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쌀이 모자라 가격이 오르면 즉시 장사꾼끼리 정보가 공유돼 다른 지역에서 쌀을 실은 차들이 이동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쌀값이 3배가 올라도 방역 차단 조치 때문에 차가 다른 지역으로 가기 어렵다. 심지어 방역을 핑계로 기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또 어느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쌀을 나르다간 쌀값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 세력으로 몰려 처벌받기 십상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돈주들에 대한 단속까지 맞물렸기 때문에 쌀값을 좌우할만한 대규모 식량 구입 및 이동이 어렵다. 그러니 어느 지역에선 쌀을 5000원에 팔아도 다른 지역에선 쌀이 없어 1만5000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두세 달 사이에 쌀값이 3배로 껑충 뛰는 것을 나는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만약 북한의 식량난이 지금 급격히 악화된다고 하면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처럼 또다시 수도와 지방 가리지 않은 대량아사 사태를 겪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은 “최근 중국이 북한에 식량 70만 톤 지원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식량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가 맞을 수 있는 코로나 백신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은 식량에 대해선 긍정적이나 백신을 받는 것은 아직 확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최근 김정은이 이병철 노동당 상무위원을 포함한 군 서열 1~3위를 전부 해임한 것은 평북 의주비행장에 방역 시설을 갖추라는 지시를 태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행장까지 하나 내서 방역시설을 갖출 정도면 많은 물동량을 받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중국의 대규모 식량 지원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중국에서 식량 70만 톤만 들어가면 북한은 아사 사태에서 벗어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에는 김정일이 체면 때문에 상황을 공개하지 않아 가장 필요한 순간 대대적인 외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지금은 미국과 첨예한 힘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얼마든지 식량 지원을 할 수 있다.

둘째로 식량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김정은은 6월 중순 특별 명령으로 군량미 창고를 열어 배급을 주라고 지시했다. 물론 군량미 창고에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에 적혀 있는 만큼의 군량미가 실제로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의지는 엿볼 수 있다. 군량미뿐만 아니라 식량 문제를 풀라는 여러 지시가 지방에 하달되는 정황이 포착된다.

반면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아사자가 속출할 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군량미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선군정치’로 포장한 계엄정치를 꺼내들어 불만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것이 김정은과 김정일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적어도 현재까진 아사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량난이 더 악화되면 북한은 한국 정부의 식량지원 카드를 받을 것일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식량지원에 있어 여러 차례 헛발질을 했다. 쌀을 보내주면 북한이 고마워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북한의 식량사정이 괜찮을 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쌀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물론 이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재작년에도 문재인 정권이 식량지원 카드를 꺼낸 지 석 달 만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라는 욕설로 응대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과거의 경험에 매몰돼 고민도 없이 꺼낸 대북정책의 말로였다.

지금 역시 북한은 한국이 쌀을 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받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쌀을 보내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섞어 보낼 수 있다고 경계한다. 그러나 만약 북한에 대량 아사가 벌어지고, 중국이 보내주는 지원도 충분치 않다면 김정은은 한국의 식량지원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제부터 북한의 식량 사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정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동족이 굶어죽을 때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죄악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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