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게 벌써 ‘죽음의 공포’가 닥쳐왔나[주성하의 北카페]

주성하 입력 2021-06-06 09:00수정 2021-06-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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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새 규약의 의미
1월 9일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주석단에 앉은 김정은이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어딘가 바라보고 있다. 이날 대회에서 김정은의 대리인 직제를 새로 명시한 노동당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 출처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1월 개최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조선노동당 새 규약이 최근 한국에 입수돼 보도됐습니다.

노동당 규약은 굳이 순서로 따지면 북한에서 두 번째쯤 강력한 권위를 가지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김 씨 일가의 소위 ‘말씀’이 최우선합니다. 김정은의 지시는 그 어떤 법으로도 통제할 수 없으며 노동당 규약이나 헌법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당 규약과 헌법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당 규약이 더 파워가 셉니다. 사람들이 처형되고 숙청될 때도 당 규약을 위반했다고 처벌 받는 경우가 압도적이지 헌법을 위반했다고 벌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수령과 노동당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헌법 정도는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헌법 아래에 형사법을 비롯한 다른 분야별 법령이 있습니다.

8차 당대회에서는 많은 조항들이 개정됐습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북한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 필요할지는 몰라도 일반인들은 알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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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45년 10월 10일 노동당을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9차례나 규약을 개정했습니다. 개정할 때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아도 결국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아마 당 규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제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북한은 김 씨 일가가 3대를 이어 마음대로 통치해왔지 규약에 언급한 노동당의 목표, 영도 방식, 노동당과 당원의 권리 등 번드르르한 말들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솔직히 평생을 북한에서 살아왔고, 북한을 연구하는 자리에 있지만 노동당 규약이 어떻게 개정됐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거기엔 북한의 현실이 거의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당 규약에 딱 한 가지는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노동당에 제1비서라는 직제가 새로 생기고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김정은)의 대리인이다”고 규정한 대목입니다. 대리인은 말 그대로 김정은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해 통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현재 시점에서 후계자라 볼 수 있습니다.

대리인 지정이 놀라운 점은 지금 김정은이 후계자를 거론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84년생인 김정은은 올해 만 37세입니다.

정치 권력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후계 구도가 정해지면 기성 권력의 파워는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대개 생전에 후계 지명을 최대한 늦추려 합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김정일이 북한 후계자로 내정된 시기는 1974년으로 김일성이 62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 발표된 시점은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로 김일성이 68세 때였습니다. 김정일이 아버지에게서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은 스스로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쳐 쟁취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의 두 아들을 몰아냈고,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6차 당대회 이후 예상대로 김일성은 점차 권력에서 밀려났습니다.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김정일을 거쳐야 했고, 김일성은 급기야 핵심 권력을 모두 넘긴 1992년에 아들에게 아부하는 ‘송시(訟詩)’까지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

자기가 했던 짓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60세 넘어서도 후계 지명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후계자를 지명하는 순간 자기의 절대 권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달 넘게 사경을 헤맨 뒤에야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했습니다. 김정일 나이 66세 때였죠. 뇌졸중에서 목숨을 부지한 김정일은 뼈만 남은 상태였고, 걸음도 겨우 옮겼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김정일을 휩쌌을 겁니다. 자신의 몸 상태는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실제 3년 뒤 김정일은 공식화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급사했습니다. 아마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했다면 김정일은 70세 넘길 때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김정은은 아버지가68세였던 2010년에야 공식 후계자로 대내외에 존재를 알렸습니다.

결국 김일성도, 김정일도 환갑을 훌쩍 넘긴 시점에 후계자를 정해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에 자신이 있다면 후계자는 절대 빨리 지정할 필요도 없고, 권력자 스스로도 그럴 생각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37세인 김정은이 후계자를 벌써 내정했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을 가능성도 대비해 사후 혼란을 막고 권력을 내 뜻대로 이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은은 벌써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퍼즐을 맞춰보니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1년 남짓 보인 김정은의 비정상적인 행보가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크게 네 가지 퍼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해 4월의 은둔입니다. 그때 태양절 기념 참배조차 하지 않아 김정은 사망설이 한국 언론을 달구었습니다. 김정은이 건강했다면 태양절 참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5월 1일 모습을 나타내 사망설은 수그러들었지만, 같은 달 24일까지 김정은은 또 23일간 은둔했습니다. 명색이 지도자인데 40일 넘도록 딱 한번만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이때 북한 고위 소식통들은 “4월 들어 김정은의 신경질이 급격히 늘어나고 비준해야 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고 있으며, 결재를 받으러 들어간 간부들을 향해 욕설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정보가 맞다면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의미고, 보이는 행동은 우울증 또는 조울증 증상과 가까웠습니다.

두 번째 퍼즐은 6월 갑자기 김여정이 등장해 대리인 행세를 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폭파하고 자기 이름으로 형식이 이상한 담화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 보고에서 국가정보원은 ‘위임 통치’라는 단어를 등장시켰습니다. 김정은이 멀쩡했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

세 번째 퍼즐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이 매우 포악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처형이 크게 늘어나고 처형 방식도 매우 잔인해졌습니다.

물론 김정은의 포악함을 얘기할 때 2013년 장성택 처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숙청의 필요성이 있다고 이해할 수라도 있었습니다. 북한 간부들이 장성택의 눈치를 살피고, 북한 재정의 절반 이상을 장성택이 장악하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권력자가 강력한 경쟁자에 대한 숙청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지려는 것은 당위성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작년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는 김정은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세력이 없습니다. 공식 서열 2위인 황병서까지 김정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입을 막으며 보고했던 장면이 대표적인 방증입니다. 권위에 도전할 세력도 없어지고, 인자함을 보여줘도 되는 순간에 포악해진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8월 노동당 경제부장이 공개 처형된 뒤 화염방사기로 불살라졌고, 올해 2월엔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가 수천 명의 예술인 앞에서 시신도 분간할 수 없이 처형됐습니다. 북한 공식 서열 5위인 박태성 선전비서가 처형됐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무려 700여명이 방역지침 위반으로 처형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신의주세관이 통째로 체포됐고, 같은 달 함경북도 온성군에선 탈북 했다가 몰래 돌아온 사람 한 명 때문에 당, 보위부, 보안서, 경비대 등의 간부 10여명이 공개 처형됐고, 모든 조직이 해산돼 소속원들이 농장에 추방됐습니다. 평양 인근 평원군에서도 보안서가 통째 해산됐습니다. 이렇게 담당 관내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조직 간부들을 죽이고 조직 자체를 연좌제로 해산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잔인함은 김정은의 정신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화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네 번째 퍼즐은 요즘 또 김정은이 사라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4월 11일부터 지금까지 50일 동안 김정은은 딱 3일 동안만 잠깐씩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다시 공식 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올해는 전국에 ‘제2의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선포한 터라 계속 나타나 다그쳐도 모자랄 판인데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에 보내놓고 자기는 사라진 겁니다. 나타나야 할 타이밍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것은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퍼즐들을 두루 꿰어보면 김정은의 건강은 어쨌든 정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본인이 누구보다 자신의 건강을 잘 알기에 37세에 대리인을 꺼내든 것이 아닐까요. 2009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아들이 권력을 물려받으려면 아직 10년은 더 권력을 지탱해야 하는데 10년 안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대리인이 될까요. 일각에선 공식 서열 2위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리인일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북한 공식 서열 2위의 죽음을 보았습니까. 북한 같은 왕조에선 2인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신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안전한 2인자는 누구일까요. 왕조 체제인 북한은 세습 재벌처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오랜 가신(家臣)이 부회장으로 있어도 물려받는 것은 결국 ‘패밀리’입니다. 그리고 부회장과 의논할 문제가 있고 패밀리가 모여 의논할 문제도 따로 있습니다. 가신의 운명도 패밀리 회의에서 결정되니 결국 패밀리 미팅이 제일 중요하겠죠.

김정은에게 현존하는 패밀리는 형제인 김정철과 김여정 뿐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고, 북한 내에도 전혀 공개되지 않은 김정철을 갑자기 2인자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가장 가능성이 높은 김정은의 대리인, 노동당 1비서는 김여정 밖에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김정은의 현재 처지에서도 여동생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일 겁니다.

아직 북한은 노동당 1비서 직제만 신설했을 뿐 김여정을 공식 임명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김정은의 대리인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자리에 누가 올랐는지 언론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죠. 만약 김여정이 1비서를 맡았으면 이미 공개해야 할 겁니다.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도 알아야 대리인의 말을 잘 들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정은의 공식 대리인 직책이 생겼다는 당 규약 내용 하나만으로 참 긴 글이 나왔습니다.

어떤 언론은 당 규약 개정에서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조선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통일론’ 관련 문구를 삭제한 것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조항이 있든 없든 우리에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노동당이 당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북한에 그럴 힘이 있을까요. 규약에 남조선혁명도 해야 한다고 하면 예산과 인력을 그쪽에 돌리지 않을 수가 없고, 헛 힘만 쓰는 꼴이 됩니다. 결국 현실성 가능성이 떨어지는 조항을 없애 실리를 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김정은 왕국도 겨우 버텨 지켜내는데 한국을 상대로 민족해방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의 2000만 명도 겨우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자유분방한 한국의 5000만 명을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볼 때 지금 김정은은 남조선혁명까지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에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김정은의 공포가 새 노동당 규약 속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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