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전단 전쟁’…바람은 누구 편일까 [이원주의 날飛]

이원주기자 입력 2020-06-23 17:37수정 2020-06-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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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쏘아올린 ‘작은 풍선’이 커다란 ‘스노 볼’이 되었습니다. 잇단 북한의 강경 발언에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대다수의 해석이지만 우선 북한은 이들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주된 이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 단체는 22일 밤 또 다시 기습적으로 대북전단을 날렸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곧 ‘대남전단’을 날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탈북자 단체가 “22일 밤 대북전단을 날렸다”며 공개한 영상.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3일 오전 경찰은 이 풍선 중 일부가 강원도 홍천군에서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채널A에 들어온 시청자 제보 사진을 보면 풍선에 매달린 플래카드가 탈북자 단체가 공개한 영상 속 플래카드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도 홍천군은 탈북자 단체가 풍선을 날린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보다 남쪽입니다.

홍천 야산에서 발견된 대북전단 풍선. 채널A 시청자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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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풍선이 22일 밤에 날아간 것이 맞는다면, 이들 탈북자단체에서 날린 풍선은 그동안 상당히 실패가 많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기사를 찾아보면 이들 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 풍선이 고도 1~3km까지 올라가 기류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갈 것으로 추정해 왔습니다. 22일은 하루 종일 맑고 잔잔한 날씨였기 때문에, 이날 풍선이 이 고도까지 올라갔다면 풍선은 북한으로 넘어갔어야 합니다. 이날 수도권 높은 상공에는 확실한 남풍(남→북으로 부는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2일 밤 한반도 상공 3.5km의 일기도. 동해에 있는 고기압 영향으로 이날 경기 북부에는 북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반면 경기 파주시 일대의 지표면 사정은 달랐습니다. 22일 밤 11시 경 경기 파주시에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간혹 부는 약한 바람도 북→남 방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이 바람을 타고 풍선이 홍천까지 천천히 날아갔다면, 풍선은 지면에서 1km도 채 떠오르지 못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린 경기 파주와 이 풍선이 발견된 강원 홍천의 위치. 홍천이 파주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보내겠다고 한 ‘대남전단’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북한이 수일 안에 이를 시행한다면 역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남한 지역에는 24일부터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습니다. 한반도 서쪽에서 강한 저기압이 다가오면서 내리는 비인 동시에, 제주가 아닌 내륙에 올해 처음 내리는 장맛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쪽에 저기압이 자리를 잡으면, 우리나라 상공에는 강한 남풍(남→북)이 불게 됩니다. 북한이 높은 상공에 풍선을 띄우면 오히려 북한에 살포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저기압이 다가오고 비가 많이 오면 지표면에서는 돌풍과 ‘윈드시어’라 불리는 수직 방향의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풍선이 제대로 날아갈 지조차 예측하기조차 어렵습니다.

24일 한반도 상공의 3.5km 상공 일기도. 서해에서 다가오는 저기압 때문에 이날 한반도 상공에는 남에서 북으로 강한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이든 남한 시민단체든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무인기(드론)를 이용하는 방법뿐입니다. 하지만 남한 단체는 사실상 드론을 쓸 수 없습니다.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풍선과 달리 드론은 항공안전법에서 명백하게 ‘항공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드론을 접경지역을 거쳐 북한으로 날리는 순간 시민단체는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P-518 비행금지구역에 허가 없이 항공기를 날리는 명백한 범법행위를 하는 셈이 됩니다. 이 경우 미확인 항공기 격추를 위해 군부대가 움직일 수 있고, 드론을 조종한 사람은 형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격추를 위해 군부대가 작전을 펼친 비용까지 모두 배상해야 할 수 있습니다.

남북 접경지역에 설정된 P-518 비행금지구역. 군용기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는 이 구역을 허가 없이 비행해서는 안 됩니다. 자료: 유엔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백보 양보해서 비행금지구역이 아니더라도 드론을 이 정도로 멀리 보내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법입니다. 항공안전법과 그 시행규칙에는 드론을 날릴 때 준수해야 할 사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조종하는 사람은 △해가 떠 있을 때만 △드론이 보이는 범위에서 직접 눈으로 드론을 확인해가면서 조종해야 하고 △그렇더라도 허가 없이 150m보다 높은 고도로 날려서는 안 됩니다. 대북전단 살포를 목적으로 날리는 드론은 사실상 이 규정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항공안전법에는 드론을 날릴 때 반드시 눈으로 드론을 확인하면서 날릴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DB



물론 남한과 북한은 모두 이 같은 ‘도발’을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남한 탈북자 단체에서는 2015년 중국 접경에서 북한을 향해 대북전단을 드론에 실어 날려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2016년 풍선에 대북전단을 잔뜩 매달아 내려보냈다가 남한의 한 시민 차량을 망가뜨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풍선이 남한까지 넘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북서풍(북서→남동)이 강하게 부는 겨울철이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남한 탈북자 시민단체가 드론으로 대북전단을 날렸다는 기사(왼쪽)와 2016년 대남전단이 남한에 날아왔다는 기사.



남한에서 대북전단을 날리고, 정부가 못 날리게 하고, 탈북자 단체가 항의하고, 또 북한에서 대남전단이 날아오고, 남한이 북한에 경고하는 일은 수레바퀴처럼 반복돼 왔습니다. 이 찜통더위 속에 또 한 번 이런 ‘차가운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또 한 번 역사가 반복되고 끝날지, 아니면 남북관계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지는 남북 양 측의 현명한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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