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막으라” 北 압박에… ‘대북전단 금지법’ 추진 공식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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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즉각 수용, 대북저자세 논란
김여정 “못본 척하는 놈이 더 미워”… 개성공단-연락사무소 폐쇄도 거론
통일부 이어 국방부까지 나서… “실효성 있는 긴장 해소안 고려중”
남북협력 의식 ‘과잉 러브콜’ 지적
일각 “北 도발용 명분 쌓기” 분석…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4일 새벽 경기 연천군에서 대북 전단 50만 장을 날려 보내고 있다. 연천=뉴스1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4일 새벽 경기 연천군에서 대북 전단 50만 장을 날려 보내고 있다. 연천=뉴스1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으라”고 압박하자 정부가 당일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대응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하반기부터 비핵화 대화 진전과 무관하게 남북 협력 사업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남북 간 관계 악화를 막고, 남북 정상이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전단 살포 중지’를 이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앞서 북한군의 남측 감시초소(GP) 사격 등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에 대해서는 북한으로부터 별 해명도 듣지 못한 정부가 김여정의 한마디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지나친 대북 저자세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 김여정 “못 본 척하는 놈이 더 밉더라”


김여정은 4일 담화문에서 전단 살포에 대해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라며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선 교류협력 성과들을 백지화시킬 수 있다고 압박하며 문 대통령의 독자적 남북협력 구상까지 건드린 것이다. 앞서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31일 경기 김포에서 ‘위선자 김정은’ 등 문구가 적힌 대북 전단 50만 장 등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에 보냈다.
○ 정부, 4시간 만에 ‘대북 전단 금지법’ 선언 논란
그러자 정부는 김여정의 담화 발표 4시간여 만에 ‘대북 전단 금지법’ 추진을 공식화했다. 통일부 여상기 대변인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전단 금지 관련) 실효성 있는 긴장 해소 방안을 이미 고려 중”이라며 “법률안 형태는 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국방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는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며 안보 위해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에서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에 합의한 이후로 정부는 관련 법 정비를 검토해왔다. 앞서 정부는 탈북민 단체들에 협조와 자제 요청, 그리고 경찰집무집행법을 적용해 전단 살포를 차단해왔다. 이미 살포된 전단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달 GP 총격 등 군사합의 위반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단체의 대북 의사표현을 “백해무익” “안보 위해행위”라며 법으로 강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대북 저자세 논란은 물론 헌법의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이 이를 통해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고, 대북 전단을 향후 도발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연락이 닿은 신의주에 있는 소식통으로부터 ‘평양에서 접경지역 부대들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삐라가 넘어오면 원점 타격하란 지시’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북한 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김여정 담화는) 대북 전단을 군사분계선 일대 무력충돌의 빌미로 삼기 위한 것”이라며 “심야나 새벽에 고사총 등으로 전단 살포지역에 경고 또는 조준사격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북한 노동당#김여정#탈북민 단체#대북 전단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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