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틈새 노린 중·러 도발…‘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文대통령 고심

  • 뉴시스
  • 입력 2019년 7월 24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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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중·러, 2016년 사드 배치 때부터 밀착"…美인도·태평양 견제 해석
균형외교 강조한 文, 참여 미루다 지난달 협력 공식화…"신남방 정책과 조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방한에 맞춰 이뤄진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및 독도 영공 침범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인도·태평양 전략 확산의 견제 목적으로 무력을 동원한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 명확히 드러날 경우 이미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으로 전선을 넓힌 미국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 실력 행사’는 사실상 묵인하면서, 문 대통령도 미국의 요구에 맞춰 인도·태평양 전략에 본격 가담하기만도 어려워진 형국으로 보인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24일 한국을 방문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155분간 회담을 갖고 중국·러시아의 KADIZ 및 독도 영공 침범 사례 등 5가지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 실장은 중국·러시아 군용기들이 KADIZ에 무단 진입해 우리 군이 단호히 대응한 사실을 설명했고, 볼턴 보좌관은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답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으로 동맹국 한국의 자주권이 명백히 침해받은 상황이지만 볼턴 보좌관이 “향후 긴밀히 협의하자”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칠 수 밖에 없던 것은 아직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정리가 안됐기 때문으로 우선 풀이된다.

볼턴 보좌관이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는 의사 결정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이 향후 협력을 약속하는 정도였을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중국·러시아·일본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데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까지 주장하고 나선 상황에서 자칫 미국이 성급히 개입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인식도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볼턴 보좌관은 기대했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와 중국·러시아 군용기 사태 해결 의지보다는 미국의 우선 관심사항을 늘어놓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안보수장은 내년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한미동맹 정신에 기반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고, 호르무즈 해협 민간 상선 보호를 위한 호위연합체 구성과 관련된 협력 방안을 계속 협의키로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처럼 미국이 쉽사리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리고서 볼턴 보좌관의 방한에 맞춰 전략적인 도발을 시도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대(對) 중국 봉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이 본격화 하던 시점부터 급속히 밀착한 두 나라의 대응들이 누적돼 터진 것이 군용기 침범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중·러 군용기 침범 사태에 대해 “다들 갑작스러운 일처럼 생각하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그 때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 사드 배치를 추진한 것을 계기로 전략적 이해를 같이한 중·러가 밀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2016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적 연대에 합의했다”며 “(이후) 극동에서는 중러 연합해상 훈련이 실시됐고, 그것이 항공훈련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을 무역 투자와 해양 안보 벨트로 묶어 새로운 협력을 추진하자는 외교전략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6년 8월 케냐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처음 언급했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 봉쇄를 위해 새 외교전략을 찾던 미국도 대(對) 중국 견제 차원에서 이 같은 개념을 수용해 확대 발전시켜 왔다. 극동 지역은 일본, 남쪽은 호주, 서쪽은 인도를 거점으로 한 벨트를 활용해 인도양부터 태평양 안에서의 경제·안보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중간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 균형외교를 펼치겠다고 공언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미·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을 꺼려 왔다.

김현철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2017년 11월 “인도·퍼시픽 라인이라고 해서 일본·호주·인도·미국을 연결하는 외교적 라인을 구축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는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가 청와대가 급히 수습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꾸준하게 동참 요구를 받아온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외교다변화를 명분으로 정부의 대외경제 정책인 신(新) 남방정책과의 접점을 찾는 선으로 정리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협력 추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아시아태평양은 양국의 평화와 번영 유지에 핵심적인 지역”이라며 “우리는 개방성·포용성·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의 조화로운 협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추진 중인 호위연합체 구성의 참여와 파병 요구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참여 공식화 후 첫 요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볼턴 보좌관은 전날 한국 도착 직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우리의 핵심 동맹이자 동반자의 지도자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고 적은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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