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주인공의 드라마가? 깜짝 놀란 김정은의 TV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18시 33분


“평양 시내에서 저녁을 먹으며 TV 스크린의 연속극을 보다가 놀랐습니다. ‘내가 지금 남한에 와있는 것 아닌가’하고요.”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진 H. 리 연구원은 AP통신 평양지국장으로 북한에 살던 시절 방영된 TV 연속극이 과거 선전물과 크게 달라졌음을 깨닫고 2013~2016년 제작된 4편의 TV드라마·쇼를 분석했다. 그가 최근 발표한 ‘사회주의와 드라마’라는 보고서에는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는 여러 면에서 구별되는 김정은의 엔터테인먼트 통치법이 담겨있다.

김정일이 영화로 통치를 했다면, 김정은의 수단은 ‘TV드라마’다. 김정일은 북한영화 제작을 위해 남한의 유명 영화인을 납치했을 정도로 이름난 영화광이다. 그가 사망한 2011년 한 해에만 10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뒤 상황은 바뀌었다. 2013년에 한 편의 영화만 제작됐으며, TV드라마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리 연구원은 “남한 드라마가 몰래 유입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상과 김정은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다루는 내용도 달라졌다. 김정일은 영화 전면에 국가에 충성하는 병사나 전쟁영웅을 내세워 국가를 우선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최근 방영된 드라마엔 개인의 일상이 담겨있다. 대표적 시트콤 ‘우리 이웃들’은 평양 시내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다룬다. 정전(停電)이 빈번한 평양의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그려져 있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특이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서도 정권에 감사해한다. 북한이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춤을 춘다. 정권이 드라마를 통해 ‘(특정상황에) 적절히 반응하는 법’을 주입하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 ‘다른 이들을 존중하라(Value Others)’는 가족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함으로서 급증하고 있는 탈북을 억제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또 다른 TV쇼 ‘젊은 연구자들’은 무인비행기(드론)을 능숙하게 다루는 중학생들을 내세웠다. 워싱턴포스트(WP)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30대 초반인 김정은이 수십 년 동안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이 세대의 충성심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 연구원은 “김정은 정권은 TV를 단순한 이데올로기 교육 수단이 아니다”면서 “현 시대에서 북한의 TV드라마는 ‘좋은 삶’을 광고하는 수단이자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수연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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