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도 아닌데… 투기규제 유탄 맞은 ‘7000만원 연봉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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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부동산대책-세법개정안 후폭풍]맞벌이-3040직장인 불만 폭주

“연봉 7000만 원이 부자도 아닌데 투기꾼 취급만 받고, 혜택은 전혀 못 받네요.”

서울 여의도에 전세로 사는 연봉 7200만 원 직장인 윤모 씨(38)는 최근 이사 계획을 접었다. 그는 올해 초 집주인에게 매달 80만 원씩 주는 소위 ‘반(半)전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마포에 7억 원짜리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8·2부동산대책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줄어들면서 자금 조달 계획이 꼬였다.

속상한 일은 부동산 장만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세법(稅法)이 바뀌며 월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연봉 7000만 원이 넘는 사람은 일괄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연봉이 200만 원만 낮았다면 공제한도를 채워 9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윤 씨는 “투기꾼을 잡겠다는 부동산 대책과 중산층을 돕는다는 세제 혜택이 내게는 도움은커녕 피해만 준다”며 씁쓸해했다. 세법 개정안과 부동산 대책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30, 4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 내 집 마련 오히려 힘들어져

젊은 직장인들은 우선 자신들과 같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각각 40%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1건 이상 있는 사람은 여기서 10%포인트 더 낮은 30%가 적용된다.

이런 조치에 모아둔 현금이 없는 젊은 직장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들은 주택을 마련할 때 대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신모 씨(35)가 대표적인 사례다. 맞벌이를 하는 신 씨는 부부 합산 연봉이 1억 원 정도. 그는 서울의 6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려다 이번 대책이 나오자 포기했다. 그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다음 꾸준히 빚을 갚는 방식은 이제 어렵게 됐다”며 “부유층 자녀들은 부모에게 집을 증여받기라도 할 텐데 우리 같은 월급쟁이는 거의 몇십 년 동안 내 집 마련을 못 하게 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무주택자를 위한 청약 가점제가 확대된 것도 30대 중산층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민영주택을 공급할 때 85m² 이하 물량의 75%에 적용하던 가점제가 100%로 확대된다.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저축 가입 기간에 따라 계산한 점수가 높을수록 당첨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에게는 불리한 방식이다. 결혼 4년 차 직장인 김모 씨(32) 역시 올 연말부터 서울에 청약을 넣어보려 했지만 이번에 가점제가 확대되면서 사실상 당첨이 어려워졌다. 그는 “자식 없는 신혼부부는 새 집 살지 말라는 것”이라며 “청약을 받겠다는 생각에 동작구에 있던 아파트도 팔아 무주택자가 됐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부자들을 잡겠다며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가 애꿎은 무주택 중산층이 피해를 보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은행 대출은 ‘흙수저’ 직장인들이 비교적 빨리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LTV를 너무 낮춤으로써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LTV, DTI 강화로 적은 금액만 대출을 받게 되면서 도리어 서민 중산층이 집을 살 때 불리해졌다”며 “돈 없는 사람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세제 혜택에서도 ‘그림의 떡’

세제 혜택의 각종 요건도 ‘연소득 7000만 원’이 기준선이 되면서 이를 넘어선 30, 40대 직장인들의 불만이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월세 세액공제다. 정부는 월세 세입자를 위해 연간 납입하는 월세액의 12%를 세액공제로 돌려주기로 했지만 연봉이 7000만 원을 넘으면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직장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 월세살이를 하는 류모 씨(37)는 “7000만 원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월 급여로는 세후 5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4인 가족이 살기에 빠듯한 편인데 공제 혜택에서도 제외돼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서 및 공연비 지출액의 30%를 소득공제하는 제도도 이번에 신설됐지만 이 역시 연소득 7000만 원 이하 계층에만 혜택을 준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지만 임금을 많이 올려주는 기업에 공제 혜택을 주는 근로소득 증대세제의 대상도 연봉 1억2000만 원 미만 근로자에서 연봉 7000만 원 미만 근로자로 기준이 바뀌었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1년 근로소득이 6000만 원을 넘고 1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소득자는 총 186만 명에 달한다. 대기업과 금융기관, 중견기업 등에서 일하는 30, 40대 직장인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산층의 소외감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박희창 / 주애진 기자
#8·2부동산대책#세법개정안#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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