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국회에 총리 추천 맡겨야… 빨리 양보하는게 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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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靑-與-野 향한 쓴소리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을 분산하고 부패를 막았어야 했는데 실패했으니 특권을 방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을 분산하고 부패를 막았어야 했는데 실패했으니 특권을 방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통령이 계속 버티면 탄핵으로 갈수밖에
침묵한 참모들도 공범…새누리당 해체를
野는 공격만 몰두…이래선 수권정당 못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정 혼란 속에 노(老)학자의 고심은 깊어 보였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민이 더 분노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절망감도 촛불을 든 시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을 보여줬다. 부패는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입만 열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박 대통령 자신이 경제 발전을 방해해온 것이다. 권력과 기회를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건 결코 용서해선 안 된다.”

 손 교수와의 인터뷰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장애인특수학교인 ‘밀알학교’에서 진행했다. 손 교수는 이 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현재 밀알복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제의 폐단이 또 드러났다. 역대 모든 대통령 임기 말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수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제의 근본적 약점이다. 민주주의는 항상 다수 의견이 소수 의견보다 낫기 때문에 좋은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 분산과 부패 방지다. 이번에도 그걸 실패했다.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국민은 최 씨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가 큰 것 같습니다.

 “불공정함에 분노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최근 실험에 의하면 원숭이도 차별 대우를 싫어한다고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경제나 예술, 문화의 수준에서 오는 게 아니다.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정당한 기회를 갖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가에 따라 국가 수준이 결정된다.”


 ―과거 한 칼럼에서 ‘특권은 의무를 요구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권한을 왜 주는가. ‘국가 공동체에 봉사하라’고 주는 것이다. 개인이 누리라고 주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관념이 너무 약하다. 박 대통령도 잘못했지만 지금 청와대를 보면 (참모들도) 다들 자기 보신을 위해,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고 침묵한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의 잘못에 입을 닫은 그들도 모두 공범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새누리당을 해체해야 한다. 해체하지 않으면 소위 보수 세력이 사라진다. 새누리당이 보수의 대변자로 있는 이상 양심적 보수가 동참할 수 없다. 현재 지도부의 사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친박(친박근혜) 진영을 빼고 건전한 보수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박 대통령의 당적이 없어진다. 이와 함께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하면 대통령은 총리에게 국정을 넘기고 외교·안보 외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자진 사퇴해야 할까요.

 “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말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를 다시 추천해준다면 더 고맙겠지만, 다른 분이라도 수용하겠다’고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버티면 될 것이란 착각과 환상에 젖어 있으면 안 된다.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말고 빨리 양보하는 게 덜 상처받는 길이다.”


 ―박 대통령이 버틴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면 국민이 불안해서 살 수 있겠나. 헌법에 있는 절차대로 탄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4개월을 이렇게 간다면 나라가 정말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대통령이 양보하는 게 최선이다.”
 ―야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재 야권의 모습에 대단히 실망했다. 국가적 위기이고 여당이 저 모양일 때 야권은 ‘우리가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여당 공격에만 몰두하지 않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야권은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 ‘저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데, 그렇다면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나라는 어떻게 되나. 이래선 수권 정당이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보며 ‘한국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가 딱 드러났다. 부패의 유혹은 행사하는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권한을 줬으면 그에 대한 감시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감사원을 독립시켜 청와대를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도 줄여야 한다. 언론도 어느 정도 청와대 내부를 취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막아선 안 된다.”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투표 행태를 바꿔야 한다. 이념에 따른 투표는 유치한 판단이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공직에선 투명성이 높은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부패한 국회의원이 다시 선출되는 일이 숱하다. 부패에 대한 분노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부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78)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학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석사, 암스테르담자유대 대학원 철학 박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명예교수 △동덕여대 총장 △현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기아대책 이사장
#박근혜#원로#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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