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돈이 많다는 게 죄가 될 순 없다. 나쁜 짓하지 않고, 세금 법대로 냈다면 말이다. 돈을 마귀로 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각은 그래서 참 독특하다. 작년 여름 신입 5급 공무원 대상 강연에서 대통령은 “이 마귀는 절대로 마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며 가장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공무원에겐 뇌물 같은 부정한 돈이 천사의 유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집 몇 채 가진 사람까지 마귀로 보는 건 기이하다. 올 초엔 “돈이 마귀라더니…설마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도 빼앗긴 건 아니겠지요?” 라고 이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엑스·옛 트위터)에 썼다. 집 많으면 모두 투기꾼으로 모는 단순(무식)한 마귀화다.
“이들(다주택자들)로 인한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은 안보이냐”고 질타도 했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이 집을 판들, 주거비용이 떨어져 청년들 살 길이 생긴다고 하긴 어렵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그 증거다.
● 한성숙이 별장 팔면, 청년 눈물 사라지나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보유했다가 매각한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동아일보 DB집 4채 가진 그가 삼청동 사는 집 뺀 나머지를 급매하고 25일 인사 청문회에 나왔다. 지난달 말 판 서울 송파구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 151.01㎡(약 46평)가 52억 원이다.
다주택자들이 이런 강남3구 아파트를 일제히 팔면, 집값 때문에 결혼 출산을 포기한 수백만 청년들이 살 수 있겠나? 15억 넘는 강남 오피스텔은? 30년 이상 성실히 일해 성공한 여성 경제인이 주말 별장용으로 마련했을 양평 전원주택을 팔면?
첫날 청문회에서 한성숙은 야당으로부터 “청문회 이틀 앞두고 1주택자가 됐다. 너무 속보이는 행동”, “이 대통령 기준에선 마귀를 벗어났을지 몰라도 국민 기준으론 권력의 마귀”란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는 “공직자와 민간인에 대한 국민 눈높이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사과했다(이 대목에서 한성숙은 민관 구분 못하는 이 대통령보다 합리적이다).
● 다주택자 패다 이제와 “닥치고 지어야 한다”?
지난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성숙 당시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하지만 다주택에 관한 한, 죄송해야 할 쪽은 한성숙이 아니다. 공급 없이 규제로만 치달은 정책당국, 그래서 집값 폭등은 물론 전·월세 씨를 말려 청년들 피눈물 쏟게 만든 책임자가 죄송해야 한다.
“부동산 정상화는 5천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며 다주택자만 후려친 이 대통령도 죄송하길 바란다. 그 쉬운 일을 입때껏 왜 못하고 있다가 김용범 정책실장이 24일 느닷없이, 뒤늦게 “닥치고 지어야 한다”는 소리나 하게 만드는가.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에겐 용지 복사도 못 시킨다며 배제를 지시했다. 그러나 총리가 부동산정책과정에서 배제될 순 없다(행정각부 통할과 조정이 총리 역할이다). 다주택자를 총리 후보자로 올린 인사검증 라인은 죄송해야 마땅하다. 정부 신뢰,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그들이 추락시켰다. 대통령 뜻에 따라, 또 막강 여당을 믿고 인사검증 따위는 우습게 여겼을 수 있으나, 얼마남지 않았다. 당청 화양연화의 시간도.
● ‘부동산 임대사업자’ 수림을 아십니까
지난해 7월 15일 오후 국회 본청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 모니터에는 당시 한 후보자의 증여세 관련 의혹을 다룬 자료가 보인다. 동아일보 DB한성숙의 다주택 문제가 해결됐다 쳐도 문제는 남아 있다. 세금 감면을 위해 부동산임대업체까지 차렸으면서도 “몰랐다”며 불법·탈법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혹시 ‘수림’이라고 들어보셨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수림은 제 개인사업자다. 부동산임대사업자”라며 ‘종합소득세 때문에’ 만들었다는 취지로 한성숙은 답했다. 2020년 전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인접 건물 두 채를 사들이면서 임대사업자로 등록했고, 이 업체를 통해 동생들에게 임대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말 문재인 정권은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지방세, 임대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을 해주는 다주택자 우대정책을 내놨다. 그래서 한성숙도 회사까지 차려 감세 혜택을 봤을 터다. 그래놓고 장관이 돼선 동생 임대건물의 불법 증축을 1년이나 방치한 것은 공직자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 허언에 농지 불법전용, 개인정보 해킹 사고까지
23일 오전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보유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건물에서 불법 증축시설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뉴시스심지어 한성숙은 지난해 청문회 때 “신속 해결”을 수차 약속했다. 그러고도 총리 지명까지 뭉개다 청문회 이틀 전에야 불법 증축을 허물기 시작했다. 일국의 장관으로서 구청의 시정명령을 어기고 이행강제금까지 물며 1년이나 버틴 것이다. 그랬던 장관이 총리가 되면 공직자들이 총리 영(令)을 따를 것 같은가(구청도 우습게 볼 터다).
민간기업 네이버에선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책임을 묻는다(한성숙도 직장괴롭힘 문제에 책임을 지고 2021년 네이버 대표에서 물러났었다). 그러나 혈세로 봉급받는 공직에선 책임지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청문회만 넘기면 된다는, 그따위로 자세로 공직에 임했으니 ‘모두의 창업’ 개인정보 해킹 사고까지 벌어졌던 거다.
한성숙의 불법 농지 전용 문제도 심각하다. 양평 전원주택으로 사들인 땅엔 농지가 절반이 넘는다. ‘자경’ 계획이라고 영농계획서를 낸 한성숙이 농사를 지었을 리 없다. 이 대통령은 2월 “농사 짓겠다고 땅 사서 가짜로 심고 방치하면 강제 매각 명령으로 팔아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안 팔고 버티다 청문회 이틀 전에야 마무리했다. 이쯤 되면 공직윤리는 물론 인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공직경험 1년 한성숙이 일국의 총리감인가
올해 3월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는 가운데 강훈식 비서실장(왼쪽)과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 세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부동산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배추 같은 스폰서를 둔 것도 아니고, 부모찬스를 쓴 것도 아닌(언니‧누나 찬스는 있다) 한성숙은 억울할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한성숙이 과연 ‘국무총리 감’이 되느냐는 근본적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래서 역대 총리는 대체로 전방위적 지적 능력과 국정 경험을 지닌 인물이 선택돼 왔다(전일욱 2015년 논문 ‘역대 국무총리 개인적 특성에 관한 연구’).
우리 헌법에서 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것도 괜히 심심해서가 아니다(지금같은 의회독재 아래선 청문회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 신임을 바탕으로 대통령 권한을 일부라도 견제하라는 깊은 의미가 있다(박성태 2022년 논문 ‘한국의 국무총리에 관한 연구’). 한성숙에게 과연 그런 능력과 자질이 있는가.
● 대통령 유고상황 벌어지면, 감당할 수 있겠나
미국 대통령 유고시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지정생존자’의 한 장면. 대통령 궐위 땐 국무총리가 1순위 국정 책임자가 된다. 넷플릭스 제공애초 이 정권이 꼽은 총리 후보(강훈식‧정성호‧한성숙) 중 누구도 그런 총리감이라고 하긴 어렵다. 심지어 그 흔한 책임총리 소리도 나온 바 없을 만큼 이재명정부 인사풀은 얄팍하다. 미안하지만 한성숙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 크지 않은 인물이었다. 만에 하나 대통령 유고상황이 벌어질 경우, 총리 한성숙이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한성숙 자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성실하고 똑똑하다는 건 인정한다(맹글도토리같은 인상만 봐도 알겠다). 그러나 ‘일만 하는 총리’(이 앞에는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가 빠져있다고 본다)가 지금 우리시대 필요한 총리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대선주자 더는 안 키운다’가 이 대통령 뜻이었다면, 축하드린다. 성공하셨다.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7회 국무회의 겸 제12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맨 오른쪽)가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왼쪽),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등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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