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총선 이후, 정치의 새로운 비전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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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3당체제 변화 요구 거센데… 정치권은 제자리
기능에 갇힌 정치, 미래 비전 안보여… 파멸의 길 갈건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왜 시(詩)가 잘 써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어느 시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가 잘 써지지 않는 이유는 ‘시’를 쓰려 하기 때문이다. 이미 누구에게나 공유된 형식의 ‘시’를 쓰려고 덤비는 한, 그 사람은 자기에게 입력된 기존의 시적 형식을 구현하느라 허겁지겁하기만 한다. ‘시’에 자신을 맞추기 바빠 자신에게 ‘시’를 굴복시키지 못한다.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시’가 주인이 되어버린다.

시란 본시 고유한 자신이 영글고 영글어서 혹은 다치고 다쳐서 안에 갇혀 있지 못하고 세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튀어나온 자신을 시가 다가와 영접하는 것이지, 그렇게 하여 시인이 되는 것이지, 이미 있는 시에 끼어들어 한자리 차지하려 애써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일은 자신을 시처럼 가꾸는 일 이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 아닌 곳으로 자폐하여 시를 멀리하고 스스로를 맷돌 삼아 거기에다 자신을 갈고 또 갈다 보면 몇 방울의 피가 엉겨 붙는다. 그 피들을 긁어모아 놓으니, 거기에 시라는 이름이 다가와 걸릴 뿐이다. 설령 시가 아니어도 된다고 포기한 채, 자신을 학대하다 보면 오히려 빛나는 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진짜 시인일수록 그 사람은 꼭 자신의 시를 닮았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시가 주인이 아니라 시인이 주인이다. 시가 생산되는 기능에 갇히는 한, 시는 없고, 시인은 태어나지 못한다. 미성숙한 사람은 시적 기능에 빠져 헤매다가 자신을 시처럼 가꾸는 일에 태만하여 시를 닮지 못하고 결국 시인이 되는 길에서 좌절한다. 그래서 시인의 좌절은 인간의 좌절이다. 정치의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대 총선이 끝났다. 여대야소가 여소야대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계속 양당끼리 비효율적 평행선만을 유지하던 구조에 제3당이 자리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것을 보고 한국 정치가 앞으로 크게 달라지기나 할 것처럼 흥분한 목소리들이 들리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의미 있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전 선거들과 다른 점이라면 고작 부정적인 의미에서 두어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이전의 선거에 항상 등장하였던 철새라는 비방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눈앞의 당선만을 노리던 가장 기능적인 정치인을 철새라고 비웃던 일이 이번에는 사라졌다. 정치가 성숙해져서 철새 정치인이 사라졌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서로 비방하기가 머쓱할 정도로 철새들로 넘쳐나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피상적인 기능만 남다 보니 당연하게도 이슈 없는 선거가 되어 버렸다. 공천과 같은 정치 기능상의 문제가 선거를 지배해 버리고,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놓고 벌여야 할 치열한 논쟁은 사라졌다. 이슈가 사라졌다는 말은 비전이 사라졌고 본령이 길을 잃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비전을 다시 찾는 일이어야 하겠다. 판이 달라져야 할 때 판을 다시 짜는 시도가 사라지고, 낡은 판 안에서 익숙해진 기능에만 갇힌 채 이슈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회는 나라를 미래로 끌고 가지 못한다. 국회의원들은 무릎 꿇고 허리 굽히던 짧은 유세 기간은 잊을 것이고, 다시 각종 특권들 속에서 위세를 떨치고 서로 호형호제하며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기능에 갇혀서 새로운 정치가 태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가 잘 써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기능에 갇힌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하듯이, 기능에 갇힌 정치인들은 새로운 정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당연히 정책은 길을 잃고, 패거리 집단들의 권력 장난으로만 세월을 보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비효율 속으로 빠져 허약해진다. 차라리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지경이 된 지금,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파멸이다. ‘궁즉변(窮則變)’이라 하지 않았던가.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일 때에 비로소 새 길을 여는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우선 자신을 맷돌 삼아 스스로를 시처럼 가꾸며 이 봄을 보내 보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20대 총선#여대야소#여소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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