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색 맞추기’에서 나아가… 소수자 지위 벗어날 경계선
성 평등 획기적 개선 기대… 저출산-청년실업 난제 해결에도 연대하는 모습 보이길

조직사회학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남긴 로자베스 모스 캔터는, 조직 안에서 수(數)에 내포된 질적 의미를 예리하게 간파해낸 인물이다. 그는 어느 집단이든 19%를 차지하게 되면 소수자(minority)로서의 지위를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성공적으로 입증해낸 바 있다.
19%에는 못 미치지만 이제 여성 국회의원들은 ‘구색을 맞추는 수준’이란 의미의 토큰(token)적 지위에선 확실히 벗어난 듯싶다. 캔터에 따르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소수자들은 소위 ‘주관적 객관화’를 경험한다고 한다. 의미인즉, 소수자들은 성이든 인종이든 불문하고 독특한 개성과 기질,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적 범주 전체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여 여성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성적표가 하위권으로 나타날 경우, 개인의 무책임이나 무능력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여자는 별수 없지”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여자가 감당하긴 벅찬 자리지” 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드러내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여성이든 흑인이든 대표 선수가 되는 위험성은 현저하게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정치권에서 거둔 할당제의 성공이 기업 및 공공부문에도 본보기가 되어 고질적인 ‘유리천장’이나 ‘유리벽’을 뚫고 임원 및 고위직에 오르는 여성 비율을 현실화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100위권 아래 머물고 있는 성평등 지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여성 의원 수 못지않게 이들의 의정 활동에 거는 기대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의 배경이 다양할수록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이 향상되고, 구태(舊態)와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일에 적극적이며, 그 결과 시너지가 배가(倍加)된다는 사실은 이젠 ‘다양성 매니지먼트’란 이름하에 상식이 되었다.
국회 내 젠더 다양성은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난제를 해결할 묘안을 찾는 일에 생산성과 효율성을 확실히 높일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일례로 여성 의원들의 중지를 모은다면, 국가적 위기로 부상한 초저출산의 해법을 모색함에 립 서비스 차원의 미봉책에서 탈피하여 보다 과감하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정책들이 입안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 전적으로 부과되는 현실, 덧붙여 감당하기 벅찬 사교육비에 전쟁에 가까운 입시 경쟁이 해소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함을 삶 속에서 절감한 여성들의 체험을 믿기에 드는 생각이다.
그뿐이랴. ‘청년 실업’이란 뜨거운 이슈 안에도 젠더에 따라 경험하는 온도 차가 다르다는 사실을 여성 의원들은 놓치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실제로 취업률 1, 2위를 다투는 대학에서 남학생 취업률이 약 70∼75%인 데 반해 여학생 취업률은 55∼60%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 현실을 여성 의원들이라면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런 리스트는 끝이 없을 테지만,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는 일에 여야를 초월하여 17%의 여성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간절히 상상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