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마저 사드 우회압박… 외교부 “장관 회담선 논의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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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美국무장관 방한]
케리가 남긴 메시지는

‘단호한 대북 메시지와 한미동맹의 강조. 하지만 한일 문제는 제3자처럼 거리 두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7, 18일 한국 방문에서 남긴 메시지다. 대북, 대일 메시지는 케리 장관이 방한에서 다뤄야만 했던 두 가지 큰 테마였다. 케리 장관의 아시아 순방이 논의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한반도 긴장 조성 행위를 지속했다. 강력한 대북 경고 필요성을 낳은 요인이었다.

아울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4월 말 방미에서 과거사를 외면하고도 미국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 만큼 케리 장관이 서울을 찾으면 최소한 균형을 맞출 만한 대일 언급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역사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종래 입장을 반복하며 한일 양자 해결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내달 방미를 전후해 특단의 돌파구를 제시하거나 역사 문제와 한일 정상회담을 분리하는 ‘투 트랙’을 분명히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 중국과 추가 대북제재 논의 시사


케리 장관은 이날 북한의 잇따른 군사적 도발 위협과 공개처형 등을 김정은 정권의 속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평가하고 행동 변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가 필요하다는 데 국제사회가 지금처럼 단합된 적이 없다”며 “한미는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도 이 같은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와 유엔의 요구사항(대북제재)을 저버린 무모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며 “이번 순방에서 한국, 중국 정상들과 향후 취할 조치에 대해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케리 장관은 이날 오후 주한미군을 만나 이 같은 북한의 핵위협 등을 강조하며 “미국의 제1방어선인 서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케리 장관이 사드를 거론한 배경은 분명치 않다. 한미 국방당국 간에도 이런 협의가 진행된 적은 없었다. 외교부는 케리 장관의 언급이 알려진 뒤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이번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전혀 협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의 이번 방한이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 사전협의 성격이 있는 만큼 양국 외교당국 간에 직접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드가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 외교의 최고위 당국자인 국무장관이 직접 사드를 거론한 만큼 한국으로서는 그만큼의 압박을 받게 됐다.

케리 장관은 국내외에서 진위가 논란이 됐던 북한의 SLBM 발사,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추구라는 매우 위험한 길로 가고 있으며 SLBM은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진단했다. 다만 케리 장관은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며 북한과의 대화 문도 열려 있음을 강조했다.

○ 성노예 아닌 ‘일본군에 의한 인신매매’

반면 케리 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해선 정밀하게 준비된 단어들을 사용하며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비난받지 않으려는 태도를 나타냈다.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이 지역에서 한미일 3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안다”며 “한미일은 동북아에서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의 가치를 공유하는 유일한 세 나라”라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대해 소개하며 과거에 포함됐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참혹하고 끔찍한 인권침해”라며 “전쟁 중 일본 군대에 의해 성적(性的) 목적으로 자행된 인신매매”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위안부를 ‘일본군 소행’이라고 공식석상에서 적시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써온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주체와 강제성을 좀 더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한일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역사 문제는 치유와 화해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한일이 양자 간에 협의해야 한다는 과제를 한국에 던졌다. 한일 역사 문제의 중재자가 되지 않겠다는 미국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방미 직후 한국 외교 위기론이 나왔던 만큼 한국으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언급이었다.

미일 방위지침(가이드라인)에 대해 케리 장관은 “미일 동맹은 한국과 오랜 기간 협의를 통해 나온 것으로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국제법 위반이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일 방위지침이 한국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미신 같은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케리#사드#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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