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워싱턴서 지켜보니, 오바마는 집권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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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미국처럼 전임 정권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평가를 역사에 맡겼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고 있는 ‘성완종 게이트’를 한발 떨어진 미국 워싱턴에서 지켜보는 기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현 정권이 이전 정권의 역사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전 정권도 현 정권에 대놓고 부담을 주는 우리의 후진적 전·현직 정권 문화 말이다. 이번 논란도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자원개발 관련 의혹을 파헤치던 중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제 발등 찍기’와 아노미 수준의 정치적 폭풍을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경위를 막론하고 언제라도 불거지면 검찰이나 필요하면 특검이 수사해 이를 명백히 밝히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이전 정권 손보기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않은 부산물로 터져 나오고, 결국 국정이 올스톱 돼 주요 이슈가 발붙일 틈이 없는 ‘블랙홀’이 되는 상황은 생산적이고 체계적인 정치 선진화 논의와는 다른 문제다.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현 정권이 이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검찰 등 사정기관을 동원해 손보기에 나서다 자신들도 감당하기 힘든 정치·사회적 소용돌이를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그렇다. 그는 2009년 집권 전 이라크 전쟁 중단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전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우리 같으면 집권 후 당장 의회 ‘이라크전 청문회’에 세울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그대로의 역사는 인정했다. 그는 2012년 6월 부시 전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해 “취임 후 하얀 머리가 늘면서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이 직면했던 도전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다”며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을 결정한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치적 행보는 거꾸로 자신에게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당초 계획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시점을 추후로 연기한다고 밝혔으나 공화당에서 이를 말 바꾸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한미 간 민주주의 역사가 다른 만큼 전·현직 문화를 수평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전·현직 정권이 서로를 최소한 인정하고 ‘윈윈’한다면 그만큼 안정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정치 개혁 등 주요 이슈를 논의하고 추진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당장은 ‘성완종 게이트’의 엄정한 수사와 진상 규명이 최우선이겠지만, 사건이 잦아들면 우리 정치권이 이번 논란을 야기한 배경 중 하나인 전·현직 정권 문화를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봤으면 한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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